개도국 원조, '얼마'보다 '어떻게'를 고민할 때

입력
2021.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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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 해외에 머물고 있는 제자들과 안부 인사 겸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이들은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개발협력 코디 및 프로젝트 매니저, 국제기구 초급전문가(JPO) 및 국제기구 직원으로 세네갈, 인도, 제네바, 런던에 파견된 30대 전후반 한국의 젊은이들이다.

한국이 2010년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고,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로 성공적으로 변모함에 따라, 개발협력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증대되었다. 이에 부응하여 우리나라의 개발협력 예산은 빠르게 증가해 왔으며 다양한 국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개발협력 프로그램이 시행되었다.

해외에 있는 제자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양성된 글로벌 인재들이다. 현재 세계가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방역이 열악한 지역에서 꿋꿋하게 한국 개발협력 프로그램의 실핏줄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국제기구에서 주니어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개발협력의 큰 흐름은 수원국(원조 받는 국가)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가운데, 무상원조와 비구속성 원조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방적이고 일시적인 원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원국의 지속적인 역량 강화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어 왔다. 한국이 DAC 회원이 된 지 10년을 넘기면서 '한국형 개발협력 전략'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제기되고 있다. 개발협력 예산을 국제사회 권고에 맞추어 늘려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개발협력의 기본 철학을 점검하고 성과가 좋은 프로그램들을 발굴하여 한국 개발협력의 대표 브랜드로 섬세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예컨대 영국은 자국의 대표적인 개발협력 프로그램으로 '뉴턴펀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영국이 자랑하는 과학자 뉴턴의 이름을 붙여 만든 이 기금은 개도국들이 기후변화, 식량,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과학기술혁신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것으로 파트너 국가와 공동으로 운영된다. 실제로 뉴턴펀드는 필리핀에서 가뭄에 잘 견디고 기후변화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쌀을 개발하는 유전공학적 연구과제를 지원해 왔다. 여기에는 필리핀 과학자뿐만 아니라 주변국 과학자들, 그리고 영국 과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브라질 과라니족의 전통 농업지식을 보존, 이를 통해 숲을 복구하고 과라니족의 생존을 지원하는 사업도 뉴턴펀드와 브라질 정부의 협력하에 진행되었다. 커피 가공과정에서 나오는 폐수로 인한 하수 오염 문제가 심각한 콜롬비아에서는 미생물 연료전지를 활용해 유해한 커피 폐기물을 전기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뉴턴펀드가 지원했다.

한국 과학기술발전 과정에서 선진국의 지원이 매우 중요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과학기술 발전에 구심적 역할을 해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미국의 원조로 설립됐다. 한국이 개도국 과학기술혁신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공공기관 설립을 지원하는 모듈을 개발하고 실행과정에 함께하는 개발협력 프로그램은 한국의 값진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또한 한국형 뉴턴펀드를 통해 한국이 줄 수 있고 파트너 국가에 필요한 기술혁신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을 발굴하고 확대하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인다. 한국 개발협력 프로그램들이 방향을 잘 설정하고 견고하게 자리 잡아 갈 때 해외 개발협력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의 노고가 더욱 값지고 빛나게 될 것이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