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청년이 머문 후 건장한 중년 아저씨가 쓰러진다 [몰아보기 연구소]

입력
2021.12.17 10:00
12면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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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바로 보기 | 1부작 | 15세 이상

서부극이라고 하면 어떤 장면들이 떠오를까. 말을 타고 달리는 무법자들, 정의 실현을 위해 몸을 던지는 보안관 등 주로 장쾌한 액션이 어우러진 장면들을 연결 지을 듯하다.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서부를 배경으로 하나 여느 서부극과는 다르다. 1920년대 미국 몬태나주를 배경으로 격렬한 움직임 대신 사람들의 심리 묘사에 집중한다. 사랑과 미움, 갈등이 오고 가다 서늘한 음모에 의한 죽음이 등장한다.

①동생의 결혼을 인정 못 하는 형

필(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조지(제시 플레먼스)는 형제다. 필은 동부 명문대를 졸업했다. 조지는 대학 문턱조차 밟지 못했다. 필은 강인하고 거만하며 남성적인 반면, 조지는 둔하고 유약하며 친절하다. 필은 조지를 위험한 세상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둘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목장을 운영한다.

둘은 카우보이들과 소떼를 방목하다 한 여관에 머문다. 남편이 사망한 여인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아들 피터(코디 스미트-맥피)가 일하는 곳이다. 피터는 종이꽃을 잘 만들며 훌라후프 돌리기를 즐기는, 여성적인 인물이다. 피터는 필과 조지 일행에게 음식 대접을 하다가 필에게 조롱을 당한다. 수줍게 말하고, 조신하게 움직이는 피터가 남성답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로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아들 걱정에, 고단한 노동에 부엌에서 흐느껴 운다. 조지는 그런 로즈의 모습에 강한 연민을 느낀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필은 로즈가 돈을 보고 동생을 꼬셨고, 세상 물정 모르는 동생이 속았다며 둘의 결합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②결혼 후에도 변하지 않는 태도

필과 조지 부부는 목장 옆 저택에서 함께 산다. 필은 로즈가 못마땅해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 로즈를 괴롭힐 수 있다면 야비한 언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조지는 그럴수록 아내에게 사랑을 쏟으나 로즈는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의대생으로 동부에서 공부하던 피터가 방학을 맞아 목장을 찾는다. 필은 피터를 여전히 박대한다. 피터는 자기 어머니를 구박하는 필을 멀리한다. 어느 날 피터는 필의 은밀한 공간을 찾았다가 필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후 필은 피터에게 다정하게 굴고 말 타는 법도 가르쳐 준다. 로즈는 피터가 필과 가깝게 지내는 게 불안하다. 필이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 수 없어서다.

③건장했던 남자가 어느 날...

필은 피터를 아들처럼 대한다. 말을 타고 초원에 놀러 가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피터는 필의 호의를 아무 경계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피터는 예전과 달라 보인다. 우연히 잡은 토끼를 자신의 방에서 해부한다. 다리 다친 토끼는 고통을 줄여 준다는 명목으로 목을 부러뜨려 죽인다. 초원에서 탄저병으로 죽은 소 사체를 연구하기도 한다. 의대생이라 당연해 보이나 심상치 않다. 필은 피터에게 가죽 로프 만드는 법을 알려준 후 급속히 건강이 악화된다. 영화 초반부 당당하게 걷던 것과 달리 비틀거리며 걷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몰아보기 지수: ★★★★(★ 5개 만점, ☆ 반개)
뉴질랜드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이 ‘8’(2008)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새 영화다. 캠피온 감독은 1993년 ‘피아노’로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했다. ‘파워 오브 도그’는 9월 첫 공개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았다. 남한 네 배 면적에 100만 명도 살지 않았던 몬태나주의 풍광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충격적인 반전이 담겼다. 컴버배치의 호연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