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회서 두 번이나 오판' 소년체전 심판장..."국제대회 활동도 어렵다"

입력
2021.12.26 14:00
11월 소년체전 수영 남자 초등부 혼계영 재경기
논란의 심판장은 '부정출발 오심' 당사자
"연맹, 해당심판 국제대회 추천 어려울 듯"
광주세계선수권 때도 시설문제로 재경기
"당시 국제 망신 당했지만 선수는 구제" 대조

지난달 열린 전국소년체전 수영 남자 초등부 혼계영 200m에서 시설물 문제가 발생해 재경기를 '다음 날' 치르기로 결정해 뒷말이 나오게 한 심판장은 같은 대회 '유년부 평영 50m 부정출발 오심 논란'의 심판장과 동일한 인물로 18일 확인됐다. 국제수영연맹(FINA) 국제심판으로 등록된 해당 심판은 당분간 국제대회 활동이 어려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수영연맹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10일 혼계영 경기에서 출발대가 움직여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팀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이되 당일이 아닌 11일 재경기를 치르기로 최종 결정한 심판장 A씨는 평영 경기 부정출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심판장이 맞다"고 말했다.

남자 유년부(초등 1~4학년) 평영 50m 경기는 혼계영 재경기 다음 날인 지난달 12일에 열렸다. 이 종목에서 우승한 선수는 출발 버저가 울리기 전 움직여 경기 종료 후 실격이라는 이의신청이 접수됐다. 유튜브로 중계된 방송에도 문제의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지만, 심판장 A씨는 '방송용 화면은 판독에 사용할 수 없다'는 FINA 규정을 이유로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아무 문제 없다'고 결론 내려 해당 선수는 그대로 우승했다. '부정출발 오심' 논란이 불거지자 수영연맹 심판위원회는 뒤늦게 A씨를 국내대회 심판에서 배제시켰다.



"한 대회에서 두 차례나 판정 논란 이례적"

이 조치로 인해 A씨는 국제대회 심판활동도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수영연맹 관계자는 "A씨는 수영연맹의 추천을 받아 2019년 1월부터 내년 12월까지 4년 동안 FINA 국제심판(경영)으로 등록됐다"며 "국내 대회 문제가 아직 결론 나지 않아 보류된 상태라, 저희가 섣불리 (국제대회에) 추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영연맹에 따르면 국제심판은 FINA가 각 회원국에 모집 공문을 보내면 각국 연맹이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연맹은 자국 전국 단위 대회 경험과 심판 활동 경력, 일정시간 교육 이수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한 심판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은 뒤 적격자를 추천하는데, 이 같은 방식으로 FINA에 등록된 경영 부문 한국인 국제심판은 현재 5명에 불과하다는 게 연맹 측 설명이다. FINA 주관 국제대회에도 등록된 국제심판 중에 연맹의 추천을 받아 참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전문가도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FINA가 회원국에 협조를 요청하면 각국 수영연맹이 자국의 국제심판들을 추천해줘 국제대회에 참가한다"며 "A씨가 몇 명 안되는 국제심판이지만, 문제가 불거진 심판을 연맹이 추천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영이) 심판 판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기록경기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이번 소년체전처럼 심판의 오판으로 인해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는 사례가 두 번씩이나 벌어진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A심판장은 국내외 경험이 풍부한 인물인데 왜 그랬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의아해했다.

A씨는 또 올해 6월 온라인으로 진행된 연맹 주최 '심판 보수교육'의 경영 부문 강사로도 활동했다. 매년 한 차례씩 심판들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이 교육은 개정된 국제 규정이나 각 대회에서 열린 판정 사례 등을 공유한다.




"2년 전 국제 망신 당했어도 선수는 구제했는데..."

사실 배영 출발대 문제는 2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도 발생했지만,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당일 재경기가 치러졌을 뿐만 아니라 선수를 최대한 구제하는 융통성을 발휘한 것으로 확인돼 이번 소년체전 대처와는 비교된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남자 배영 100m 예선 전체 7개조 중 6조에서 출발한 이탈리아 선수 시모네 사비오니는 출발 총성과 동시에 힘껏 벽면을 박찼지만,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장비(렛지)가 그 힘을 버티지 못해 완전히 이탈해 버렸다. 장비 결함 문제가 인정돼 다른 선수들이 모두 경기를 마친 뒤 원래 없던 8조에서 홀로 재경기를 하게 됐는데 두 번째 출발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장비를 교체한 뒤 세 번째 출발 만에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같은 종목에 출전한 트리니다드토바고 선수 딜런 카터도 렛지 문제로 인해 당일 다른 종목(남자 자유형 200m 예선)이 끝난 뒤에야 급조된 9조에서 홀로 재경기를 치렀다.

두 선수는 다행히 상위 16명 안에 들어 준결승에 진출했고, 이로 인해 기존 16위 안에 들었던 2명이 17, 18위로 밀려 탈락할 위기에 처하자 FINA는 이들에게도 준결승에 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미국과 일본 등의 외신들이 불량 출발대를 문제 삼아 보도하며 '국제 망신'을 당하기도 했지만, 융통성을 발휘한 대회 진행으로 선수들의 피해는 최소화했다. '심판 퇴근'을 이유로 다음 날 재경기를 치러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면서 논란이 커진 이번 소년체전 때의 대회 운영과는 정반대였다.

한 수영계 인사는 "자국에서 올림픽만큼이나 중요한 큰 국제대회를 치르고서도 정작 대회 운영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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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