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허브도 소·부·장이 먼저다

입력
2021.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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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여름부터 주도적으로 글로벌 백신허브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술력과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세계의 백신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이다. 10여 년 전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절, 백신이 없어서 해외백신회사에 우리도 백신 좀 달라고 사정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이런 계획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상황이 상전벽해와 같은 발전이고,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글로벌 백신허브라는 개념은 단어만으로 보면 양질의 백신제품을, 어느 나라보다 신속하고 신뢰도 높게, 대량으로 생산해서 수요 국가들에 충분히 공급해 줄 수 있는 생산 능력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단순히 생산시설의 규모나 수준만 키우고 높이는 것만으로 도달되는 목표는 아닐 것도 같다. IT업계의 구조에 비교해 보면 결국은 생산을 하는 파운드리와 더불어 이를 설계하고, 테스트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공정을 최적화하는 등의 연구와 개발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연구개발과 생산에 공통적으로 대규모 수요가 지속되는 소재와 부품, 장비(소·부·장)의 안정적인 공급망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좋은 백신후보물질의 설계나 테스트는 이미 잘 구축된 해외기업이나 연구소 등에서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개발이 완료된 제품만 우리가 신속하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바이오파운드리'의 구축도 당장의 목표일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백신허브의 궁극적인 위치와 역할을 고려하면서 국가의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면, 생산능력을 뒷받침하는 우수한 개발 인프라의 전 주기적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바이오팹리스'안정적인 소부장의 공급을 확보할 수 있는 '바이오소부장' 시스템의 구축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백신산업의 요소이다.

그런데 바이오파운드리와는 다르게 개발 인프라나 소부장과 관련된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와 지원, 우수한 운영능력만으로 구축되기는 어렵다. 실제 현장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신뢰도 높은 평판과 강력한 구매수요를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발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들 분야의 기업들은 대개는 아직 작은 규모이거나 국제적인 인지도가 확고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만들어 낸다고 국내 백신업체들이 무조건 써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기존의 유명기업과의 협력이나 유명기업의 생산시설을 국내에 유치하는 등 다양한 전략적 발전방안이 필요해 보이는 분야이다.

바이오파운드리가 장기적으로 우수한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발되는 원료물질을 어떤 방법으로든 국내에서 신속하고 확실하게 테스트해주고 개발해주는 비임상시험, 임상시험, 생산공정 최적화 등을 담당할 바이오팹리스 기업들을 빠르게 발전시켜서 전 주기적인 지원이 가능해져야 할 것이고, 이런 과정을 흔들림 없이 지원해줄 수 있는 생산장비나 원료물질 등의 소부장 공급 시스템도 공고해져야 할 것이다.

생산이 최종적인 목표지점인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생산기지로서의 위치를 장기적으로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결국 '바이오파운드리'를 지탱해줄 '바이오팹리스'와 '바이오소부장'의 공고함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균형 잡힌 완전체적 백신공급 시스템", 이것이 글로벌 백신허브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이런 것들을 위한 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계획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홍기종 건국대 교수·대한백신학회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