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송모(50)씨는 점심시간에 찾은 식당 문 앞에서 방역패스 때문에 휴대폰과 씨름을 벌여야 했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애플리케이션(앱) ‘쿠브’와 네이버, 카카오톡의 전자예방접종증명(QR코드) 모두 접속이 안 됐다. 휴대폰에 남아 있던 접종 기록을 찾아 보여주고서야 겨우 들어갔다.
비슷한 시간 세종시의 한 식당에선 QR코드가 안 떴는데 들어가겠다는 손님과 안 된다는 점주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큰소리가 오고 갔다. 뒷줄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직장인 이모(34)씨는 “정부가 오늘은 접속이 잘될 거라 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식당과 카페는 QR코드 인증 기기를 아예 치웠다. 서울의 한 카페 직원은 “방역패스 확인하다 보면 줄이 계속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안심콜만 해달라 하고 손님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방역패스 의무화 둘째 날인 14일에도 곳곳에서 접속 오류가 속출했다. 이날 오전 “오늘부턴 정상화할 것”이라던 정부의 예상은 1시간도 안 돼 무너졌다. 방역패스 의무화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해온 정부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이날 오전 방역당국은 전날 발생한 방역패스 접속 장애에 대해 잇따라 고개를 숙였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등도 줄줄이 공식 사과했다.
질병청은 전날 밤 관련 전산회사들과 함께 실시간 대량 인증 정보 처리를 위해 서버를 증설하고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작업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오전만 해도 “오늘부터는 방역패스 확인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방대본 역시 “오늘은 원활하게 발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류는 여전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식당을 찾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쿠브와 네이버 앱의 QR코드 접속 오류가 속속 나타났다. 네트워크 접속이 안 되면서 화면이 먹통이 되는 어제와 비슷한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방역패스 먹통의 원인은 수요 예측 실패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은 네이버, 카카오 앱과 쿠브의 접종증명 QR코드를 방역패스로 이용한다. 이들 모두 KT가 운영하는 서버를 통해 정보를 처리한다. 방대본은 방역패스 의무화 전 계도기간의 사용량을 토대로 서버를 증설했다. 하지만 의무화 첫날이던 지난 13일 QR코드 접속량은 계도기간 사용량보다 훨씬 많았다. 증설된 서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실시간 접속이 쏟아지면서 먹통이 된 것이다.
특히 의무화 시작과 함께 접종증명을 처음 이용하는 사람이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대에 한꺼번에 앱에 접속하면서 서버에 과부하가 걸렸다. QR코드를 받으려면 먼저 앱에서 본인 인증을 한 뒤 접종 기록을 불러와야 한다. 이 과정을 한번 거치면 다음부턴 앱을 켤 때 접종 기록이 담긴 QR코드가 바로 생성되는데, 전날과 이날 인증부터 처음 시도한 이용자가 많았던 것이다.
결국 정부가 QR코드 이용 패턴, 주요 사용 시간대와 인원 등을 면밀히 예측하지 않은 채 방역패스 의무화를 시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 방침을 따르려는 국민들에게 오히려 불편만 안긴 꼴이 됐다.
이번 사태는 지난 5~7월 예방접종 사전예약 때와 닮은꼴이다. 70~74세, 예비군과 민방위대원, 55~59세, 교사와 돌봄인력, 53~54세 등 접종 대상군이 예약을 시작하는 날마다 사이트 접속 지연이 되풀이됐다. 당시 많은 이들이 잠을 설치며 대기해야 했고, 국민들의 접종 의지를 행정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접종 사전예약은 접속 규모가 대략 정해져 있다. 그런데도 먹통이 됐으니 이번처럼 실시간 접속량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더 높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모임을 하더라도 주의하란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방역패스 적용은 필요하다”면서 “더 철저히 점검하고 시행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허점만 드러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도 접속 장애 때문에 방역패스 확인을 못한 경우엔 과태료 처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단 장애 발생 시간대 외엔 과태료를 매긴다는 방침이다. 지자체 현장 점검 때 접속 장애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생길 거란 우려마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