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대신 시각장애인…현대적으로 풀어낸 새로운 성경 나와

입력
2021.12.14 17:12

그리스어·히브리어 성경을 현대적 한국어로 번역한 새로운 성경이 나왔다. 국내 개신교계에서 널리 쓰이는 개역개정 성경과 비교하면 긴 문장을 짧게 나누는 한편, 원문의 문체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여성이나 장애인처럼 특정 사회 계층을 비하하는 느낌을 주는 낱말이나 표현도 현재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말로 번역됐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겨냥한 새로운 성경이다.

대한성서공회는 그리스어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우리말 어법에 맞도록 문장을 다듬은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출간했다고 14일 밝혔다. 현재 예배 등에서 널리 쓰이는 개역개정 성경이 전통이 있지만 ‘택정’처럼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담겨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개역개정 성경은 1998년 출간됐는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역된 성경인 ‘셩경젼셔’(1911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컨대 개역개정 성경은 여러 문장이 줄줄이 연결돼 있다. 로마서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로 시작해 7절까지 이어진다. 반면 새한글성경은 같은 구절을 ‘바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부리시는 종입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따로 구별된 사람입니다.’라고 표현한다. 마침표를 이용해 문장을 7개로 나눴고 문체도 이해하기 쉽다.

대화문 역시 상황에 맞는 입말로 옮겨졌고 높임법이 도입됐다. 예수가 대중에게 하는 말은 격식체인 합쇼체를, 기도나 개인에게 하는 말은 해요체와 친밀한 어투를 사용한다. 과거에 통용됐으나 현재 널리 사용하지 않는 낱말은 가능한 현재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새로운 낱말과 표현으로 대체됐고 필요한 경우 전통 번역을 병기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현대에서 비하적으로 보이는 표현들도 문맥에서 꼭 필요로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말로 수정됐다. 요한복음 5장 3절의 경우,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라고 쓰여져 있다. 새한글성경은 ‘그 통로에는 아픈 사람들, 시각장애인들, 지체장애인들, 몸에 일부가 마비돼 못 쓰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누워 있었다.’고 표현한다.

새한글성경 번역 작업은 공신력 있는 해외의 그리스어·히브리어 성서들에 바탕을 뒀다. 국내 개신교 교단들에 소속된 40대 젊은 성서학자들과 국어학자들이 1년 동안 번역 원칙을 연구하고 2012년 12월부터 번역을 시작해 9년여 만에 신약과 시편이 나왔다. 새한글성경 완역본은 2023년 말에 발간될 예정이다.

조지윤 대한성서공회 번역실 국장은 “개역개정 성경은 110년의 전통을 가졌지만 어려운 표현이 많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많이 보는데 작은 화면에서도 바로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성경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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