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처분 인용에 교육부 '허둥지둥'... 초유의 수시·정시 마비사태 올까

입력
2021.12.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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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가운데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을 두고 수험생들이 제기한 '정답 결정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했다. 교육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법원 결정 뒤 부랴부랴 긴급회의를 소집한 끝에 일단 성적통지표는 배부하나 생명과학Ⅱ는 공란처리하기로 했다.

수험생들은 가처분 신청에 이어 정식 소송까지 제기해둔 상태다. 이 재판은 10일부터 시작되는데 수능이라는 특수성을 감안, 재판부가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린다해도 최소한 1, 2주는 걸릴 것이란 예상이 많다. 결론이 나올 때까지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생명과학Ⅱ에 응시한 학생은 총 6,515명이다. 수험생 규모는 작지만, 과학탐구Ⅱ 과목 중에선 응시자가 가장 많다. 거기다 올해는 문이과 통합 수능 첫해이기에 생명과학Ⅱ가 주로 이과생이 응시하는 과목이라지만, 파장은 이과생을 넘어 문과생에게까지 미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교육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14학년도 출제오류 재판 1년 걸려 ... 혼란 불가피

평가원은 일단 본안심사를 받아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입시 일정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올해 수시 최종 합격자 발표는 16일까지고, 정시 원서접수는 30일부터다. 1심 결과가 정시 원서접수 전에 나오지 않으면 정시가 전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시 또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제시한 대학들은 수능 성적이 확정되기 전에 선발이 어렵다. 현재 가처분 신청의 집행정지 기간은 1심 판결시까지다.

만에 하나 1심에서 수험생들이 승소하고, 평가원 측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판결이 날 경우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모두 정답처리된다. 다만 생명과학Ⅱ 표준점수 최고점이 1~2점가량 떨어질 수 있다. 현재 생명과학Ⅱ 표준점수 최고점은 69점이다. 20번 문항 정답률은 EBS집계 기준 24.6%이며 배점은 2점이다. 모두 정답처리 시 오답을 찍은 75.4%도 정답으로 인정돼 평균 1.5점 상승 효과가 난다.

하지만 수험생이 이견을 제시할 때부터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평가원이 이제 와서야 출제 오류를 인정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2014학년도 수능 당시에는 세계지리 8번 문제를 두고 1년여간 재판이 진행됐다. 당시 1심은 입시 일정을 고려해 12일 만에 결론을 내렸으나, 이후 항소심은 다음해 10월에나 결론을 내놨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즉시 성적 재산정 방식과 피해학생 구제방안을 내놨지만, 소송이 길어지면서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이미 다른 대학으로 진학해버려 큰 실익이 없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사건, 2014학년도 사건과 닮았다

주목할 부분은 2014학년도 세계지리 8번 출제오류 양상이 올해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두 문제 모두 질문과 지문, 보기로 구성됐고, 지문에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오류가 발생했다.

앞서 평가원은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 대한 수험생들의 이의제기에 대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일축했다. 출제에 다소 허점이 있다 해도 큰 문제는 안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2014학년도 세계지리 8번 사건을 맡았던 항소심 재판부는 "비록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마친 평균 수준의 수험생들이 출제의도에 의해 정답으로 예정된 답안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선택하는 데 별다른 장애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출제의도에 의해 정답으로 예정된 답안이 객관적 사실 즉 진실과 일치하지 않으면 예정된 답안과 객관적 사실이 기재된 답항 모두를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재의 평가원 논리가 법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이과 통합 첫 수능 ... 사상 초유의 정시 마비 사태 벌어지나

이 때문에 입시학원들은 차라리 평가원이 신속히 오류를 인정하라고 주장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과에서 문과로 넘어오는 교차지원이 가능한 통합수능 첫해라 문이과 정시지원이 모두 마비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대학과 수험생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건으로 영향을 받는 학생들은 대개 과학탐구Ⅰ과 과학탐구Ⅱ를 반드시 응시해야 하는 대학에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울산과학기술대, 울산과학기술원, 한양대, 단국대 의예·치예·약학과, 광주과학기술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등은 해당 과목을 치른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한다. 특히 화학Ⅰ, 생명과학Ⅱ 조합의 학생들은 최상위권 구간에 더 밀집, 점수 경쟁이 치열한 집단이다.

교육부·평가원 '허둥지둥'... 비상계획 없어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교육부와 평가원은 비상계획조차 세우지 않아 허둥지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이날 오전 수능 채점결과를 발표하면서 가처분 신청 결과에 따른 비상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예단하지 않는다"며 "상당히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해야 답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절차를 갖고 있지 않아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교육부와 평가원은 이날 오후 3시 40분쯤 법원의 인용 결정이 알려지자 부랴부랴 긴급 대책 회의에 돌입했다. 후속대입일정은 10일 대학교육협의회, 대학 등과 재논의 할 계획이다.

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