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중국을 겨눴다. 미국 주도로 9~10일 열리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다. 중국이 내정이라 주장하는 홍콩과 대만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다. 핵심이익이 훼손당한 중국은 격하게 반발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한국을 포함한 112개국과 함께 홍콩 민주화 운동가 네이선 로를 초청했다. 로는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혁명의 주역으로 데모시스토당 주석을 지냈다. 지난해 7월 홍콩이 국가보안법을 시행하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이번 회의 강연자로 나선다. 18일 홍콩 입법회(우리의 국회) 의원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인 만큼 불씨가 꺼져가는 민주진영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중국에게 로는 ‘눈엣가시’나 마찬가지다. 자연히 거친 반응을 쏟아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9일 “외국 정부의 꼭두각시로 국가안보를 해친 지명수배자를 회의에 초청한 건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 모독”이라며 “범죄자를 감싸면서 홍콩 문제에 간섭하고 반중 세력을 부추기려는 미국의 음흉한 계략은 실패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세계를 민주와 비민주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민주정신에 반하는 정치논리에 불과하다”면서 “분열과 대결을 조장하는 냉전적 사고는 역사의 대세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대만도 초청하면서 중국은 더 부아가 치밀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16일 미중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로 불장난하면 타 죽을 것”이라고 거칠게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보란 듯 대만을 국제사회 무대 중앙으로 끌어들였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에 대만이 회원국 아닌 옵서버로 참석하는 것조차 반대해온 중국은 일격을 맞았다. 이외에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에도 대만 참여를 지원하고 있어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대만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 국가들은 중국 신장지역 인권탄압을 이유로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잇따라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초청한 적 없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중국청년망은 “우리가 초청하지 않은 정부 대표단이 오든 말든 상관없다”면서 “미국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려는 바보 같은 쇼”라고 평가절하했다. 뤼샹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미국은 어떤 약이든 복용하려는 심각한 병자, 함께 보이콧에 나선 호주 등은 미국의 심복”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홍콩과 대만 문제는 보이콧과 차원이 다르다.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만큼 체제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도발이나 다름없다. 특히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7일(현지시간)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미국은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장담하며 중국을 자극했다.
이에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이번 회의는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이미지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구시보는 “미국과 대만이 민주를 외치지만 돈 선거, 극단주의 정치, 극심한 사회 분열 등 민주주의 위기에 처한 것은 매한가지”라고 꼬집었다. 대만은 차이잉원 총통 대신 천재 해커 출신 성 소수자 탕펑 디지털 정무위원과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 대표, 대만민주기금회, 대만인권촉진회가 회의에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