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개 식용 금지 검토 지시까지 수십 년 동안 끌어온 동물 복지 문제에 대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난 해였다. 반면 동물학대 뉴스가 끊이지 않는 등 동물들의 수난도 계속됐다. 거시적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간과 동물 간 적절한 거리두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애니로그가 2021년을 돌아보고 내년에는 동물의 삶이 보다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가나다순)와 함께 10가지 동물 뉴스를 선정했다.
1. 대통령 개식용 종식 검토 지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며 관계부처 검토를 지시한 이후 정부는 '개 식용의 공식적 종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정부가 개 식용 종식을 논의하기 위한 공식기구를 만든 건 의의가 있다. 하지만 현재 개식용 산업에서 자행되는 불법행위에 대한 실태 조사나 처벌에 대한 언급이 없어 동물단체와 반려인의 실망(▶관련기사 보기: 43년째 개식용 논란, 현 정부서 끝내야)도 컸다.
2. 수족관 고래류의 잇따른 폐사
2021년에만 수족관에 사는 고래류 5마리가 사망하면서 이제 국내에 남은 고래류는 22마리다. 남아있는 고래류를 모두 야생 방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해외 전문가들과 동물단체들은 포획시기, 방류 장소 등을 고려할 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방류는 무리(▶관련기사 보기: "준비 안 된 고래 방류, 죽음으로 모는 일"… 해양포유류 전문가의 일침)라고 보고 있다. 야생 방류, 생크추어리(보호시설) 설립, 해외 생크추어리로의 이송 등 이들을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3. 고어전문방 판결은 솜방망이
올해 1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고어전문방'에서 길고양이·너구리 등을 살해하고 학대 영상과 사진을 공유한 이모씨가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 솜방망이 처벌이란 목소리가 높다. 고어전문방 가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온라인 동물 학대를 막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아쉬운 소식이었다.
4. 사육곰 잇단 탈출과 생크추어리 조성
올여름 경기 용인시 사육농장에서 곰 1마리가 탈출해 사살된 데 이어 지난달에도 같은 농장에서 3마리의 곰이 탈출했다. 매년 꾸준히 발생하는 사육곰 탈출의 원인은 정부와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 솜방망이식 처벌에 있다. 9월 말 기준 26개 농가에서 길러지는 사육곰은 웅담채취용 369마리, 불법 증식된 전시관람용 26마리다. 정부와 동물단체가 생크추어리를 짓고 있지만(▶관련기사 보기: '웅담 채취용 5번'에서 '보금이'가 됐습니다) 수용공간은 부족하다.
5.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의 수난
8월 말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이 전남 진도군 식용개 농장 구조과정에서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 네 마리를 확인했다. 진도에 사는 진돗개는 약 1만 마리로 3,000마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나머지는 천연기념물 예비 자원으로 보호받도록 되어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한국 진도개 보호, 육성법'이 진돗개 보호에 초점을 맞춰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관련기사 보기: "천연기념물 진돗개, 민간 아닌 국가가 사육해야")이 힘을 얻고 있다.
6. 남양주 개물림 사고와 개 기질평가 도입
올해 5월 경기 남양주시 야산 입구에서 한 여성이 개에게 공격당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 개의 보호자로 인근 불법 개농장 운영자 A씨를 특정하고 정황 증거와 전문가 소견을 종합해 과실치사 등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이를 계기로 위험한 개 기질(공격성)평가 제도 도입과 떠돌이개, 개농장 개에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 필요성(▶관련기사 보기: "위험한 개 안락사 결정, 과학적 판단 필요합니다")이 제기됐다.
7. 개 눈 적출 후 인공 눈 넣은 수의대
2월 개의 안구(눈)를 적출하고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만든 인공 눈을 넣은 충북대 수의대 연구에 대한 동물실험 윤리 문제가 제기됐다는 한국일보 보도(▶관련기사 보기: [단독] 멀쩡한 개 눈 적출 후 인공 눈 넣어…"동물실험 윤리 도마 올라") 이후 "연구팀을 규탄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이 실험은 해당 대학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승인을 거쳐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동물실험 승인을 하는 유럽연합(EU)과 영국, 호주 등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8. 끊이지 않는 고양이 등 동물학대
올해도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동네 고양이 학대가 끊이지 않았다. 동네 고양이가 학대에 쉽게 노출되는 건, 반려동물과 다르게 보호자가 없어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고양이 학대를 막으려면 보호자가 없는 고양이를 함부로 다루는 건 명확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사람들이 동물 학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주변을 감시하는 게 필요하다. (▶관련기사 보기: [애니청원] "보호자 없어 괜찮다고?" 동네고양이 학대, 양형기준 마련해야)
9.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법무부가 내놓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법무부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나 동물피해에 대한 배상 수위가 높아지는 등 우리 사회가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민법은 각종 법의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동물권 발전을 위한 기초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10. 코로나19로 인한 인간과 동물 관계 재정립
좀처럼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는 인간과 동물, 자연과의 적절한 거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했다. 세계적 영장류 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야생에 존재하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인간에게까지 감염되고 확산된 건 동물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시(disrespect)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얻은 가장 소중한 교훈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 재정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