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코로나19 상황이 앞으로 최소 3년은 더 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의 맥이 탁 풀릴 만한 얘길 어렵사리 꺼냈다.
지난해 초, 처음엔 코로나19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당했다. 집 밖 출입을 끊었더니 마스크를 쓰다 백신을 맞으면 된다 했다. 올해 들어 겨우 구해온 백신을 맞기 시작했더니 감염력이 더 강한 델타 변이가 생겼다 했다. 그래도 백신 다 맞고 집단면역이 생기면 괜찮겠거니 했다. 그런데 오미크론 변이가, 그보다 더한 변이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얼추 2년이 다 되어 가는 코로나19 사태다. 그런데도 끝이 안 보인다. 모두가 답답하고 지겹고 힘들다. 좋은 소식은 없다. 최근 영국 정부의 자문단이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는 데 최소 5년이 걸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정 교수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최소 3년을 더 갈 것이라고 질병관리청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주장했다.
정 교수가 말하고 싶은 바는 "코로나19 사태 종말에 해피엔딩은 없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일단 정부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드 코로나는 성급했고, 확진자 등 여러 예측은 실패했다. 사과하고 이해를 구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정 교수도 정부의 방역정책에 적극 참여해왔다. 자신의 잘못도 인정한다 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이라면 결국 관건은 정부의 재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일러 결국 '누구에게 더 손해를 끼칠 것이냐'는 판단의 문제라 했다. 사람 생명이 더 중요하다면,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더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적극적 보상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우리 정부가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손실보상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방역 강화 vs 민생 경제'라는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방역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자꾸 작아지고 소외됐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 3년 더 갈 것으로 예상했다.
"어느 정도 버티면서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데 걸릴 시간이다. 3년이면 적게 잡은 것이다. '간다'는 개념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안 없어진다. 인류가 수많은 백신과 약을 만들었지만 이 세상에서 없앤 바이러스는 천연두, 딱 하나다.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같은 상황이 3년 더 이어진다는 뜻인가.
"백신 접종률 80%, 백신 감염예방 효과가 80%라 가정했을 때, 우리나라 인구 중 900만~1,000만 명 정도는 스스로 면역을 얻어야 한다. 하루 확진자가 5,000명, 숨겨진 감염자가 3,000~5,000명 더 있다 보고 하루 최대 확진자를 1만 명으로 잡으면, 3년간 매일 1만 명이 나와야 1,000만 명이 된다. 우리나라처럼 방역을 열심히 한 나라는 지금 같은 상황이 더 길어질 것이다."
-백신접종과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가 컸다.
"델타 변이가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델타의 등장은 백신 접종만으로 위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줬다."
-방역당국 예측보다 확진자 증가세가 가파르다.
"늘 것으로 봤지만 이렇게 빨리 늘 줄 몰랐다. 정부와 전문가의 실수다. 누군가는 죄송하다고 말해야 한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로 가도 확진자 1만 명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확진자 1만 명을 감당할 수 있는 체계를 언제까지 갖추느냐가 문제였다. 역량 확충을 위해 시간을 벌어야 했고, 일상회복을 점진적으로 했어야 했다."
-위드 코로나는 시기상조였나.
"두 가지가 가장 어긋났다. 하나는 백신 효과 감소 시기를 대비하지 못한 점이다. 두 번째는 일상회복 1단계에 한꺼번에 많은 조치를 완화했다. 후회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현재 특별방역조치를 4주 시행 중이다. 이후엔 어떻게 해야 하나.
"상황이 설혹 나아진다 해도 위드 코로나 계획을 처음처럼 진행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이번 조치가 방역과 의료상 효과를 불러올 만큼 강력한지는 의문이다."
-일상회복을 조정하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반발이 클 것 같다.
"정책 설계에서 가장 어려운 건 지금이 재난 상황이란 점이다. 평화로운 일상이 깨졌기에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 누구한테 피해를 나눠 줄지, 어떻게 줄일지 고민해야 한다."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맞추려고 할 때마다 논란이 됐다.
"누구에게 피해를 줄지 빨리 결정해야 한다. 결정이 늦어지고 필요한 조치를 제때 못하면 줄일 수 있는 피해도 못 줄인다. 이번 조치도 일주일 정도 늦어졌는데, 의사결정이 빨랐다면 상황은 개선됐을 것이다."
-유럽에선 최근 확진자가 2만~7만 명까지 나온다.
"일상회복이 원래 그렇다는 걸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한다. 접종으로 피해를 줄여 놨지만, (거리두기를) 풀면 늘 수밖에 없다. 백신 접종만으로 위기가 안 끝난다는 얘기다."
-국내 확진자가 늘면서 '백신 무용론'이 나온다.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니다. 접종률이 높지 않았다면 지금 상황에서 하루 확진자는 유럽처럼 수만 명이 나왔을 것이다."
-정부가 백신 접종률 80% 달성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다. 정부가 2회 접종하면 상황이 끝날 것 같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건 감염병과 재난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한 게 아니다. 2회 접종으로 끝났다면 모든 나라가 이렇게 고생하겠나. 희망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한 현실을 알리는 것이다. 반복하자면 감염병은 누군가 반드시 피해를 본다. 행복한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잘못 보낸 또 다른 신호는 무엇인가.
"정부가 재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폈는지 의문이다. 국민이 세금을 열심히 낸 건 재난에 대한 대비 때문이다. 올 초부터 손실보상 없이는 방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손실보상이 제때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방역 전문가들이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너무 미안해 강력한 방역 정책을 제안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정부의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적극적인 손실보상 의지는 의료·방역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년은 어떻게 될까.
"내년 상반기는 의료진들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 일상회복에 따른 여파는 계속 누적적으로 이어지고 유행 규모는 점차 커질 것이다. 더 큰 고비가 남았다."
-위중증 환자가 더 많아질 것이란 의미인가.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도 오르지 않나. 12월 조치가 효과를 본다고 해도 소폭 감소하는 정도다. 일상회복을 다시 진행하면 또 늘게 돼 있다."
-내년 상반기라면 3, 4월쯤 확진자 2만까지 갈 수 있나.
"어려운 문제지만 충분히 갈 수 있다. 다만 (거리두기) 완화 정도에 따라 확진자가 얼마나 늘지 전혀 알 수 없다. 우리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 시기와 규모를 냉정하게 예상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확진자 2만 명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내년 먹는 치료제가 공급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중환자 전환율을 낮추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해결할 게 너무 많다. 효과를 보려면 조기에 투약해야 하는데, 감염을 조기에 발견하는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치료제 물량을 그만큼 갖고 올 수 있을지, 복용 시 이상 반응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해결해야 한다."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추측이 난무한다. 코로나19가 새롭게 전개된 것이란 추측도 있다.
"지금 자료만으로 말하는 건 너무 이르다. 희망적 이야기를 하면 좋겠지만 정책을 짜는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델타 변이도 방심하다 당했다. 오미크론 변이가 약하다는 평가, 관측이 나와도 델타 변이 수준으로 대응하고 준비해야 한다."
-신생아도 예방접종이 필수가 되는 시대를 맞을 수 있겠다.
"예상은 어렵지만, 새로 태어난 아이들도 추가 접종하게 될 수 있다. 신생아를 접종하면 면역은 유지된다. "
-전망을 밝힐 수 있는 대책은 없을까.
"백신 접종률을 더 높이고 3차 접종을 하는 수밖에 없다. 확진 규모 자체를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