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파산 몰아넣는 간병돌봄...국가 지원 넓혀야

입력
2021.12.08 17:00
24면

편집자주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있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병원비는 며칠 미룰 수 있어도 이건(간병비) 미룰 수가 없어요. 매달 30일에서 하루라도 간병비가 밀리면 (간병인이) 그만둬 버리니까요.”

지난 9월 부친(87)이 급성 담낭염으로 쓰러져 수도권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이관식(가명ㆍ50)씨는 비로소 간병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아버지는 심정지까지 와 2주간 에크모 치료까지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 회복 중인데 병원비는 지금까지 1,000만 원가량 나왔다. 병원비는 모친이 냈지만 하루 10만 원, 한 달에 300만 원에 달하는 간병인 비용은 형, 누나와 매달 번갈아 지불하고 있다. 이씨는 “병원비는 어머니가 해결했지만 간병 비용은 자식들이 내기로 했다”면서 “그나마 어머니가 병원비를 낼 수 있는 형편이고 3남매나 되니 어찌어찌 간병비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병문안을 가는 주말마다 간병인에게 기저귀, 간식값도 따로 줘야 하고 간병인에게 “잘 살펴 달라”며 10만~15만 원씩 용돈도 챙겨준다. 부친이 입원 중이었던 지난 3개월 동안 병원비만큼 간병비용이 들어갔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노령화 가속으로 가계 위협하는 간병비 연간 8조 원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 아버지를 굶어 죽게 해 존속살해 혐의로 1,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22세 청년 강도영(가명)씨 사건. 직장도 없었고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어떻게 간병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강씨의 안타까운 사연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 추세, 가족 내에서 주로 간병을 담당했던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 핵가족화 등으로 간병문제는 어느 가족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문제가 됐다.

간병인을 고용할 때 들어가는 직접 비용은 물론이고 간병인 대신 가족이 직접 돌봐야 할 때 투입되는 기회비용이 모두 큰 손실이다. 양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6년 동안 간병돌봄을 했던 김인규(44ㆍ경기 안양시ㆍ회사원)씨는 우리나라의 간병 현실에 대해 “높은 간병비와 질 낮은 서비스로 환자 가족들을 경제적ㆍ정신적으로 파탄지경에 몰아넣는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렌터카 업체에서 일하던 김씨는 2014년 말 고향(충남 논산)에 계신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 기나긴 간병생활을 시작했다. 부친이 입원했을 때는 결국 간병인을 구하지 못해 김씨는 일을 그만두고 부친이 숨질 때까지 2개월간 직접 간병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부친이 사망한 다음 해 모친도 부신피질부전증으로 쓰러졌다. 2019년 세상을 뜰 때까지 김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과 서울의 병원, 요양병원, 요양원을 전전하며 간병문제의 심각성을 몸소 경험했다.


간병비도 간병비이지만 제대로 된 간병인을 구하기도 힘들었다고 김씨는 토로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키가 165㎝ 정도로 작으셨고 거동도 가능했는데 간병인이 ‘남자는 힘들다’고 피했다”며 “웃돈을 더 얹어준다고 해도 싫다고 해 결국 직접 아버지 수발을 들어야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간병인이 여성 노인을 간병하고 있더라”고 씁쓸해했다.

간병비는 생계를 위협할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간병인을 쓴 건 어머니가 입원 중이던 2016~2019년인데 적게는 하루 8만 원, 많게는 하루 9만 원씩 간병비를 지불했다. 병실 전체를 한 간병인이 돌보는 공동 간병인을 쓴 적도 있지만 가격이 제멋대로였다. 한 시립병원 9인실에 모친이 입원했을 때 병원 홈페이지에 공동 간병비로 하루 1만 원을 내면 된다고 공지돼 있었지만 입원기간(23일) 동안 29만 원을 내야했다. 이렇게 해서 김씨가 3년간 어머니 간병에 쓴 비용은 3,180만 원. 기타 비용을 합하면 대략 4,000만 원이 간병비용으로 들어갔다. 양친의 병원ㆍ간병비용과 생계비를 충당하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 했고 김씨는 5,000만 원가량 끌어썼다.

간병 경험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역시 비용이었다. 시민단체인 간병시민연대가 지난 4월 간병 경험이 있는 1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44.2%가 ‘간병비용’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개인 간병인을 쓴 응답자 중 63%는 하루 10만 원 이상을 지불했다고 답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간병비용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공식 통계는 없다. 서울대 간호대 박사과정인 이진선씨가 올 4월 발표한 보고서 ‘사적 간병비 규모 추계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정책적 시사점’은 간병에 어느 정도의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는지를 추산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간병비는 6조9,000억~8조 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경상의료비의 5.6% 수준으로 2008년(2조8,000억~3조7,000억 원)의 두 배다. 급속한 노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간병비의 증가폭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관리감독을 받는 대부분의 의료행위와 달리 자격증도 없는 인력이 전적으로 간병업무를 맡고 있는 점도 문제다. 불법적인 의료행위가 병원당국의 묵인하에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간병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간병업무 외에 간호사 업무를 대신했다는 응답이 58%에 달했다. 석션(가래뽑기), 소변줄 갈기, 소변량 체크, 관장 등 통상 우리나라 병원에서 간병인들이 하는 많은 일들은 법적으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다.

전국에 1,700여 개의 간병인 파견업체가 운영되고 있는데 대부분 영세해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데도 간병인 교육을 실시하는 병원은 32.4%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양현정 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노인에게는 영양액을 천천히 넣어줘야 하는데 간병인이 자기 몸이 힘들다고 노인에게 채근하듯 영양액을 넣어줘서 환자가 숨도 못 쉴 정도가 된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김인규씨는 “어머니 팔에 멍이 있어 병원에 물었더니 ‘간병인이 때렸다’고 하셨다”며 “간병인을 바꾸긴 했지만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분이 안 가신다”고 말했다. 간병시민연대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웃돈도 받으려 하고 씻기는 건 해주지도 않는다’ ‘본인이 힘들다고 본인의 스트레스를 몸이 아픈 환자에게 풀면 안 된다’ 등 간병인들의 불친절함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 설문조사에서 간병인의 간병서비스가 다소 불만이었다거나 형편없었다는 응답은 80%를 넘었다.


간병의 사회적 연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더딘 확장 속도가 문제

지난 1일 찾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병원. 이 병원은 건보공단 소속 공공병원으로 간병인이 없다. 현재 393병상(코로나 병상 제외) 중 353병상이 간호와 간병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전담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원이다. 이 병원에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2시간씩 교대로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체위를 변경해주고, 머리를 감기고, 화장실을 함께 가며 재활훈련을 시켜준다. 이런 병상 운영이 가능한 것은 일반병원에 비해 환자당 간호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병동(43병상 기준)이 병동 1명당 간호사 16명과 지원인력 2명이라면, 간호간병통합병동은 간호사 26명, 간호조무사 8명, 간호지원인력 4명으로 2배 이상이다. 간호간병통합병동 인력은 건강보험 재원으로 운영되며 일반 병상보다 수가(의료 서비스 요금)가 높다.

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지난달 초 방에서 넘어지면서 고관절이 골절돼 입원한 정형외과 병동의 김수단(76ㆍ경기 고양시 덕양구)씨는 “호출벨만 누르면 간호사들이 음식도 데워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하니 걱정 하나 없이 지낸다”며 “출가한 두 아들과 딸, 며느리들에게 부담도 안 줘 너무 좋다”고 말했다. 고관절 수술을 한 뒤 3주간 입원한 김씨의 병원비는 100만 원도 나오지 않았다. 왼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한 뒤 같은 병동에서 재활치료 중인 이광인(75ㆍ경기 김포시)씨도 “귀찮을 정도로 친절하다. 가족들과는 전화로만 연락하는데 아무 걱정 말라고 말한다”고 했다. 2019년 일산병원의 환자 만족도 조사 결과 90%가 ‘전반적인 입원 간호서비스에 만족한다’고, 79.0%는 ‘간호 제공이 충분하다’고 응답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시작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환자의 부담을 4분의 1 정도로 경감한 것으로 분석된다. 건보공단이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병동에 입원하면 하루 9만660원(6인실, 일 간병비 8만 원 기준)을 내야 하지만 간호간병통합병동에 입원하면 2만2,340원만 부담하면 된다. 지난해 이 병동을 이용한 환자는 162만5,488명으로 간병비 7,959억 원을 절감한 것으로 공단은 분석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개인의 간병 부담을 건강보험재정 투입이라는 사회적 연대로 해결책을 모색한 획기적인 제도이지만 확대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게 문제다. 병원급 이상 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데 9월말 기준으로 605개 병원이 참여, 대상 병원(1,600개)의 37.8% 수준이다. 병상 기준으로는 6만2,018병상이 확보돼 대상 병상(24만7,835병상)의 25.0%에 불과하다. 안형식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013년 처음 시작할 때 2, 3년 내 병원급에서 100% 시행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는데 간호인력 부족으로 확대가 너무 더디다”며 “최소한 300병상 이상인 병원은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급성기 병상의 간병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 9월 보건의료노조와 맺은 노정 합의에서 300병상 이상 급성기 병원(단기간 치료를 요하는 환자가 이용하는 병원)에 대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기로 한 바 있다.

문제는 또 있다. 각 병원이 간호간병 필요도가 높은 중환자는 일반병동으로 보내고 간호간병 필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환자를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보내는 ‘역선택’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환자들이 간병인을 따로 고용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강주성 간병시민연대 활동가는 “간호간병통합병동에 정말로 돌봄이 필요한 환자가 가야 하는데 병원에서는 경증환자를 입원시키고, 중증환자는 일반병동으로 보낸다"며 “병동 단위로 계약하지 말고 병원 단위로 계약하도록 방식을 바꿔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관건은 간호간병 인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간병이 필요한 환자에 필요한 업무는 대체로 의료적 난이도가 높지 않다”며 “응급상황, 투약, 채혈 등 필수적인 업무만 제외하고 간호조무인력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간병인력을 제도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정석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간호간병통합병동에서 경증환자만 골라 받는 문제 해결를 위해 병원 단위로 시행하는 방안 등을 고민 중”이라며 “병원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시설 개선비를 높이는 등 인센티브 확대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