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년 2월 개최될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정부 대표를 파견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발표하자 일본 정부가 곤혹스런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동안 중국 견제 행보에 미국과 보조를 맞춰 온 일본이지만, 내년 중일 수교 50주년을 앞두고 있어 외교적 보이콧 동참에 부담이 적지 않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7일 미 정부의 외교적 보이콧 공식화 소식이 전해진 후 기자들의 질문에 “올림픽의 의의라든지, 나아가 우리나라 외교에 있어서 의의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국익 관점에서 스스로 판단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현 시점에서는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며 “향후 적절한 시기에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스스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도 기자회견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제반 사정’ 중 인권도 고려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가치인 자유, 기본적 인권의 존중, 법의 지배가 중국에서도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입장은 다양한 층위로 중국 측에 직접 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발표하기가 무섭게 자민당 내 우파 정치인들은 일본도 미국 정부의 결정을 추종해 외교적 보이콧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토 마사히사 자민당 외교부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보이콧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우파 모임인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도 이날 오후 기시다 총리를 면담해 보이콧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 모임의 대표인 아오야마 시게하루 참의원 의원은 “베이징올림픽에 일본 외교사절단을 파견하면 인권 탄압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현재 총리의 자세는 실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앞서 아베 신조 내각 때부터 내년 중일수교 50주년을 기회로 대중 관계 재설정에 나서려던 참이었다.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일도 추진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중단됐다. 올 들어 중국 측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해 침범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일본 내 반중 감정이 커졌고, 이를 우파 정치인과 언론이 부추기면서 현재 일본 여론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 극도로 부정적이다. 미국의 입장만 따라온 결과 독자적인 외교 공간이 축소된 것이다.
외무장관만 4년 반을 지낸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일방적인 대중 강경대응이 꼭 ‘국익’에 바람직하진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당내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향배도 중요한 대목이다. 그동안 “중국에 할 말은 한다”며 겉으로 의연한 모습을 보인 기시다 총리가 곧 결단을 내려야 할 갈림길에 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