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처럼 둘러쳐진 겨울나무... 50년 만에 빗장 푼 비밀의 정원

입력
2021.12.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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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아가페정원과 달빛소리수목원, 논산 온빛자연휴양림

식물도 서로의 온기로 겨울을 넘긴다. 이웃이 버팀목이다. 꽃 지고 잎 떨어진 겨울 숲은 황량하기 그지없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막상 숲속에 들어가면 겨울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 있다. 거추장스러운 치장을 훌훌 벗어던지고 당당히 드러낸 수형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익산 황등면에 군집의 효과를 보여주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 종교적인 무조건적 사랑,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실현되는 사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아가페정원’이다. 정원의 분위기도 이와 꼭 닮았다.

이 정원은 1970년 고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하고, 몸과 마음의 안정과 휴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꾼 부속 시설이다. 정양원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올 3월 전라북도 제4호 민간정원으로 등록한 후, 시민 쉼터로 무료 개방했다.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정양원을 제외하고,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약 11만5,700m²(3만5,000평) 부지에 메타세쿼이아, 섬잣나무, 공작단풍 등 17종 1,400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서 미로처럼 연결된 산책로를 걸으면 잘 다듬어진 향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숲길을 통과한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다양한 나무 군락으로 자연스럽게 구분된 정원이 비밀의 숲처럼 등장한다. 영국식 포멀가든(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구조로 설계한 화단) 구역에 도착하면 겨울철 이 정원의 주인공이라 할 메타세쿼이아 숲과 마주한다.

울타리 삼아 심은 500여 그루 메타세쿼이아가 성벽처럼 정원을 감싸고 있다. 일직선으로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 기둥이 위풍당당하다. 잎이 거의 떨어졌지만 수많은 잔가지로 형성된 원추형 수형이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뽐낸다. 고대 건축물의 회랑을 따라 걷는 듯하다. 50년 세월이 빚은 자연의 작품이다.



무수한 손길로 섬세하게 가꿔진 정원이지만 인위적이라는 느낌은 덜하다. ‘한 평 도서관’과 수수한 포토존, 군데군데 놓인 벤치를 제외하면 요란스런 장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방과 동시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명소로 등극한 건 순전히 숲과 나무의 본질에 충실한 이 정원의 힘이다.

아가페정원과 함께 익산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 춘포면의 ‘달빛소리수목원’이다. 20여 년을 가꿔 2018년 6월 문을 연 사설 수목원이다. 아담한 언덕에 오르면 500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긴다. 밑동에 2~3명은 충분히 비를 피할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어 ‘황순원의 소나기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겨울철이라 화려한 꽃은 볼 수 없지만 금목서와 호랑가시나무 등 활엽상록수가 푸르름을 자랑한다. 분홍색이 쏙 빠졌지만 복슬복슬한 솜털뭉치를 자랑하는 핑크뮬리도 이색적이고, 간간이 핀 동백꽃도 볼 수 있다. 꼭대기에 자리한 2층 카페에서는 전주 방향으로 호남평야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음료 값에 입장료가 포함돼 있다. 음료를 마시지 않으면 별도로 3,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익산과 이웃한 논산 벌곡면의 온누리자연휴양림은 요즘 SNS 핫플레이스로 뜨는 곳이다. 명칭은 휴양림이지만 숙박시설이 없는 개인 소유 숲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약 500m 걸으면 소형 사방댐이 나오고, 건너편에 자리 잡은 예쁜 2층 목조 주택이 잔잔한 수면에 비친다. 노란색 외관과 주변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푸른 물에 비친 모습이 꽤 이국적이다. 특히 오후 햇살에 더욱 따사롭게 보여 해질 무렵 찾는 사람이 많다. 이 집 역시 숙박시설이 아니라 휴양림 소유의 개인 별장이다. 사방댐 위쪽에도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조성돼 있다. 사진이 목적이 아니어도 걷기 좋은 숲이다. 아직까지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익산·논산=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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