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억만장자는 왜 '창문 없는 기숙사'를 제안했을까

입력
2021.12.04 10:00
[美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 '멍거 홀' 기숙사 ]
미 억만장자 찰스 멍거, 2억 달러 기부 조건으로 설계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참고
층마다 64개 1인실... 창문 대신 조명·환기 시설 달아
설계심사위원, "한 인간으로 지지할 수 없다" 사임

편집자주

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여행이 있습니다. 세계 건축을 통해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살펴봅니다.

“건축가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멍거 홀’을 지지할 수 없다.”

지난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UCSB) ‘멍거 홀’ 기숙사 설계안이 발표되자 설계심사위원이었던 건축가 데니스 맥파든은 이같이 밝히며 사임했다. 그는 다양한 공공기관 설계 심사 업무를 맡아온 저명한 건축가다. 15년간 캘리포니아대 설계심사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르코르뷔지에의 아파트'에서 영감받은 기숙사

그가 반대한 ‘멍거 홀’은 대학 측이 학생들의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15억 달러(약 1조7,700억 원)를 투입해 마련하는 초대형 기숙사다. 2025년 완공 예정이며 4,500명이 입주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억만장자 찰스 멍거(Chales Mungerㆍ97)는 기숙사 건립을 위해 2억 달러(약 2,300억 원)를 기부했다. 멍거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절친한 친구로,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기도 하다. 대학은 그의 기부 뜻을 기려 기숙사 이름을 ‘멍거 홀’로 정했다.

멍거는 기부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대학 측에 자신의 뜻대로 기숙사를 지을 것을 요구했다. 그가 제안한 기숙사는 168만㎡(약 50만8,200평) 규모의 부지에 11층짜리 네모반듯한 집합주택이다. 밖에서 봤을 때는 같은 크기의 창문이 일률적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아파트와 다름없다.


멍거는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1887~1965)가 프랑스 마르세유에 1952년에 설계한 집합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집합주택은 2차 대전 이후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노출 콘크리트의 12층짜리 건물에 330여 가구를 촘촘하게 배열한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다.

당시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며 인간이 살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대 1,600명을 수용했던 집합주택이지만 르코르뷔지에는 각 가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복층으로 구성해 천장을 높이고, 창과 베란다를 활용해 환기와 채광에 신경 썼다. 또 건물 외벽에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의 페인트를 칠해 지루함을 덜어냈다. 이 주택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8평짜리 창문 없는 감옥” 비난 쏟아져

‘멍거 홀’은 르코르뷔지에의 집합주택과 외부는 얼추 비슷하지만 내부는 딴판이다. 11층 중 9개층이 주거용으로 마련된 ‘멍거 홀’은 각 층마다 8개의 직사각형 공간으로 분할된다. 분할된 공간은 다시 8개의 작은 직사각형 공간으로 나뉜다. 층마다 가로 3m, 세로 2m의 약 6㎡(약 1.8평)의 1인실 64개가 배치된다.

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각 방에는 창문이 전혀 없다.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자동환기시설이 달려 있다. 각 방에서 나오면 주방 등 공용시설이 있다. 외부에서 보이는 창들은 모두 공용시설에만 설치됐다.

멍거는 이에 대해 “건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적화한 구조”라며 “각자의 방에 창문이 없어야 햇빛이 들어오는 공동구역에서 서로 어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부 조명을 이용해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신의 인생에서 언제 태양을 바꿀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이 기숙사에서는 그게(빛 조절) 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서 그가 2015년 1억1,000만 달러를 기부해 세운 미시간대 기숙사에도 창문이 없다.

맥파든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 기숙사로 알려지게 될 ‘멍거 홀’은 우리의 정서와 신체에 중요한 햇빛과 공기, 풍경과 같은 ‘주거 인권’을 모두 무시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며 “게다가 이 기숙사의 인구밀도는 전 세계 인구밀도 6위인 방글라데시에 버금간다”고 비난했다. 학생들도 “감옥 독방 같다”, “돔질라(Dorm+Godzillaㆍ괴물 기숙사)의 탄생”이라는 반응 일색이다. 반면 대학 측은 “영감을 주는 혁명적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맥파든은 법의 허점도 짚었다. 그는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채광과 통풍이 보장되지 않는 주거 공간은 불법이다”라며 “하지만 소유주인 대학 측이 건축법상 ‘대체 규정 준수’라는 조항을 악용해 조명과 자동환기시설이 창문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해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멍거 홀'은 내년 캘리포니아 해안위원회의 건축 승인을 받아야 한다. 멍거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기숙사의 편리성과 쾌적함에 감탄할 것"이라며 "어떤 설계든 불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맥파든은 “대학 기숙사는 삶이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존귀하게 만드는 정서적 안식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