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중동에서 미국의 말발이 점점 안 먹힌다

입력
2021.12.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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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중 갈등 심화는 중동 지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1월 19일 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국영 해운기업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칼리파항에 군사시설을 비밀리에 건설하다가 미국 정보 당국에 적발되었다고 한다. 화들짝 놀란 바이든 정부는 위성사진을 근거로 문제가 된 칼리파항 공사를 중단하도록 아랍에미리트 정부에 요청했다.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아부다비 왕세제가 두 차례 직접 대화를 나눴고, 9월 말에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브렛 맥거크 국가안전보장회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조정관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리파항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은 워싱턴이 중동 지역 항만 개발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베이징을 크게 우려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해상 실크로드 구축을 표방하며 다른 나라의 항구를 빌려 해양 진출을 모색하는 소위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해양강국 건설을 표방해 온 시진핑 정부는 파키스탄의 과다르항,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과 같이 동남아시아와 인도양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의 주요 항구 개발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오만의 두큼항, 아랍에미리트의 칼리파항, 사우디아라비아의 얀부항과 지잔항, 카타르의 신 하마드항을 중심으로 해양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중국의 중동 항만 개발 참여와 경제 협력 확대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첨단기술이 베이징으로 유출될 수도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미국의 걱정은 중국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는 중동 국가가 늘어나면서 더 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상당수 중동 국가들은 화웨이의 5G 제품을 도입하기로 했다.

중국 화웨이 문제를 산업이 아닌 안보 관점에서 접근하는 미국은 중동의 동맹국들이 화웨이 제품을 도입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때때로 동맹국들을 압박하는 주요 수단으로 군사 무기가 활용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워싱턴의 정가에서는 최신 스텔스 전투기 F-35를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화웨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중동에서 현재까지 F-35를 보유한 국가는 이스라엘이 유일하다. 작년 9월 아브라함 협정 체결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아랍에미리트는 F-35를 도입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F-35를 제공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핵심기술이 중국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며 은근히 아랍에미리트를 압박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먼저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해야 안심하고 미국의 첨단무기를 줄 수 있지 않냐는 논리이다.

그런데,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의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이다. 화웨이와의 거래를 유지함은 물론이고, 미국과 거래가 꼬이면 대체 무기를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도입할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동맹 관계에서 신뢰성이 감소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 중동 국가들은 미국이 동맹국들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과거와 같이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고 인식한다.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나타나듯 중동을 떠나는 미국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국 간의 갈등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국익을 극대화할 나름의 방안을 찾는 것을 우선시한다. 미중 갈등이 중동까지 확대되는 가운데 미국의 압박이 잘 먹히지 않는 이유이다.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