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매출 1000만 원인데 수입은 200만 원... 헤어샘의 열정페이

입력
2021.12.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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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란 이름의 乙들] <4> 끝  '헤어 디자이너'의 view

혜리(23 ᆞ가명)씨의 손이 파마약과 염색약으로 ‘성할 날’이 없어진 건 열일곱 살 때부터였다. 첫 직장은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소개한 프랜차이즈 미용실이었다. “계약서를 쓰면서 ‘4대보험 들래 말래’ 묻더라고요. 그게 뭔지도 몰랐죠.” 스태프(견습생)로 첫발을 뗐을 때 받은 월급은 140만 원. 이 중 50만 원을 원장의 계좌로 보내야 했다. 일명 ‘교육비’ 명목이었다. 동료 언니는 대출까지 끌어 썼다. 미용은 기술보단 경험이라니까 ‘그런가 보다’ 하며 버텼다. “머리 만지는 게 너무 재밌고 좋으니까, 꾹 참았어요. 이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3년을 버텨 마침내 헤어 디자이너가 됐을 때, 혜리씨는 그야말로 ‘만능캐’로 거듭나 있었다. 재고 관리부터 미용 용품 주문, 예약 관리, SNS 광고 포스팅, 홍보 영상 편집, 광고 배너 제작, 하다못해 손님 응대용 커피를 타는 것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본업 외 이 모든 잡무를 다 해내면서 받은 월급은 230만 원. 눈물 삼켜가며 버틴 머리엔 맥이 턱 풀릴 정도로 허망했다. 버티다 못 해 퇴사할 때 원장에게 ‘퇴직금’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퇴직금? 너 프리랜서인데 퇴직금이 어딨어.” 노동청에 호소해도 결과는 같았다. “근로자처럼 일한 증거 자료를 다 가져갔는데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애초에 계약서 잘못 쓴 제 탓이래요.”


월평균 소득 214만 원, 시간당 임금은 7,697원(2021년 최저임금 8,720원), 10명 중 7명 이상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열정페이’ 최전선, 이곳은 바로 미용실이다. 4대 보험에 가입된 헤어 디자이너는 10명 중 1명꼴. 하루 10시간 내내 폐쇄회로(CC)TV에 감시당하고, 매출 압박에 들들 볶이는 신세지만 이들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다. 일한 만큼 벌어가는 '프리랜서'지만, 프리랜서의 이점은 모두 빼앗기고, 약점만을 떠안은 헤어 디자이너들의 일터를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따라가 봤다.


이 나라의 미용사가 일하는 법, ‘이름’만 프리랜서

7년 차 헤어 디자이너 지민(28 ᆞ가명)씨의 하루는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의 한 헤어숍으로 출근하며 시작된다. 프리랜서지만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다. 1분만 지각해도 손님 배정 순번에서 제외된다. 퇴근 시간은 오후 8시, 공휴일이나 주말에 쉬는 것은 절대 불가, 평일 중 딱 하루를 쉬며 주 6일 일한다. 코로나19 백신은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월차 휴가에 맞았다. 점심 거르고 일하는 게 습관이 돼서 십 년째 위장 장애를 달고 산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게, 그래서 자유롭다는 게 ‘프리랜서’의 정체성인 줄로만 알았다. 현실은 한참 달랐다. 언제나 숨막힐 듯 답답했다.

국내 헤어 디자이너의 대다수는 1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 임금 체계는 철저히 성과급 중심이다. 매월 본인이 올린 매출에서 카드수수료, 매장이용료, 카카오헤어숍 같은 플랫폼 사용료를 제외한 일부를 가져간다. 매장이 매출의 60~70%를, 디자이너는 30~40%만 가져가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다. 보통 취업 후 첫 3개월은 ‘정착지원금’이란 명목으로 고정 월급을 지급하다가, 6개월이 안 돼 100% 성과급제로 전환된다.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홍보, 마케팅은 전부 개별 디자이너들의 몫이다. ‘일한 만큼 가져간다’는 원칙 아래 이들은 철저히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매장이 ‘고용주’처럼 이들의 근무에 사사건건 간섭한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2, 3번씩 하는 회의는 일명 ‘군기를 잡는 시간’이다. 일찍 퇴근하지 말라고, 삼삼오오 모여 있지 말라고, 떠들지 말라고, 헤어 디자이너에겐 ‘용모가 곧 명함’이니 부지런히 꾸미라고 요구한다. 간섭은 감시로까지 이어진다. 매장 곳곳에 설치된 CCTV가 10시간 내내 일거수일투족을 비춘다. “실시간으로 감시를 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원장에게서 전화가 와요. 이거 해라, 저거는 하지 마라.” 계약을 프리랜서로 했었으니, 이들에게 원장은 ‘업무상 동료’일 뿐이지만 원장은 헤어 디자이너들을 ‘고용인’ 취급한다. 매장 청소 같은 허드렛일까지 이들의 의무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악물고 버텼던 스태프 기간이 아까워서라도, 못 그만둬요"


이런 상황에서도 이 일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건, ‘스태프’로서 보낸 수년간의 훈련 기간이 못내 아깝고 억울해서다. 미용업계에선 일명 ‘도제식’으로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전문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장 경험이다. 가발로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현장에서 만지는 고객의 두상, 가르마, 머리카락의 형태가 ‘천차만별’이라 실전에선 큰 도움이 안 된다. 경험을 쌓으며 ‘감’을 익히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헤어 디자이너 지망생들은 일선 매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운다. 샴푸부터 커트, 펌, 탈색, 염색 등 다양한 기술을 하나하나 마스터하기까지 평균 2, 3년, 누구도 책임지고 이들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열의를 가지고 덤벼야 한다.

스태프 수련 기간이 가장 길고 고되다는 ‘뷰티 1번지’ 청담동에서 스태프로 일한 명훈(27ᆞ가명)씨는 총 6단계에 달하는 ‘스파르타급’ 승급 과정을 거쳤다. ‘헬퍼-어시스트-주니어-인턴- 인턴 스타일리스트’를 거치는 데 장장 5년이 걸렸다. 스태프로 일할 당시 월 급여는 100만 원, 이 중 교육비로 원장 계좌에 30만 원을 보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건 70만 원 남짓이었다. “스태프 급여는 청담동이 비강남권보다 훨씬 적어요. 청담동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만으로 버티는 거죠. 여기서 디자이너가 되면 다른 사람보다 더 벌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고요.”


반 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승급 시험은 엄격했다. 지각 몇 번에 응시 자격조차 박탈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연예인이나 웨딩 고객만 가려 받는 청담동 숍의 특성상 일반 숍에 비해 요구하는 자질이 훨씬 더 까다로웠다. 상명하복식 군대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라, ‘가르친다’는 미명 아래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그냥 이 악물고 사수의 비위를 맞췄던 거 같아요. 사수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 거죠. 결국 그 사람한테 계속 배워야 하니까.” 명훈씨는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일 시키는 입장에서 후배를 가르치는 건 ‘당연한 의무’라는 걸. 그게 ‘보통의 상식’이라는 걸.


이렇게 피나는 노력 끝에 '청담동 출신' 딱지 단 헤어 디자이너가 되어도 쓰디쓴 현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억대 매출에 연예인 전담으로 붙는 '스타' 디자이너는 0.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민씨의 동료는 헤어 디자이너로 승급한 지 1년 만에 결국 미용일을 그만뒀다. “청담동 타이틀 하나 믿고 버텨왔는데, 청담동에 있다고 해서 다 스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에게 알려진 0.1%는 인맥과 운이 받쳐준 사람들이죠. 몸은 힘든데, 처우는 변함없이 열악하고, 결국 돈이 안 되니 그만두게 되더라고요.” 지민씨는 그렇게 영영 잃은 동료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해도해도 너무한 ‘벼룩의 간 빼먹기’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아르바이트’ 형태로 계약을 하는 스태프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아졌다. 청년유니온의 2021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태프들의 2013년 2,971원(당시 최저임금 4,580원)이던 시간당 임금이 최근 6,287원(2021년 최저임금 8,720원)까지 올랐다. 주당 근로시간 역시 64.9시간에서 48시간으로 26%가량 줄었다. 전에 비해 처벌이 엄격해진 결과다. 하지만 헐값에 마음껏 부리던 스태프들에게 제 값을 치러줘야 하는 매장주들은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벼룩의 간을 빼먹듯’ 이들의 주머니를 털기 시작했다.

5년 차 헤어 디자이너 수진씨는 자신의 월급을 쪼개 스태프 월급을 줘야 했다. 보통 스태프들은 정해진 시간 매장에 상주하며 여러 디자이너들의 일을 돕는다. “어느 날 갑자기 원장님이 ‘스태프 한 명 전담으로 붙여줄 테니 네 월급에서 스태프 인건비 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수십만 원이 빠져나갔다. 항의하자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스태프를 써야 매출도 더 올라간다. 가르치는 것도 경험이다. 수진씨는 부모님이랑 사는데 뭐가 걱정이냐. 나 때는 다 이렇게 커리어 쌓았다' 하는데 말문이 턱 막혔죠.” 상황이 이러니 월 매출 1,000만 원을 찍어도 통장에 찍힌 월급은 200만 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참다 못해 퇴사 의사를 밝히자 투정 부리는 어린 아이 달래듯 ‘좋은 옷 한 벌 해주겠다’며 회유했다. “계약서 쓸 때 약속했던 퇴직금 이야길 꺼내자 돌변하며 ‘그런 적 없다’고 시치미를 뚝 떼더라고요. 결국 아무것도 못 받고 나왔어요.”


그뿐이 아니었다. 퇴사를 결정하자마자 매장 측은 수진씨가 개인적으로 운영해 오던 인스타그램 계정의 삭제를 요구했다. 수진씨가 직접 모델을 구해 시술한 헤어 스타일링 이미지들이 쌓여 있는 계정이었다. “매장 약품을 썼으니, 저작권은 매장에 있다는 논리였어요. 게시글이 상위 노출될 수 있게 따로 마케팅 비용까지 지불하며 운영하던 개인 계정이었는데도요. 어이가 없었죠.” 계정을 삭제하기 전 퇴사 사실을 알리는 글을 올리자 ‘계약 사항 위반’까지 운운했다.

결국 수진씨는 업무용 휴대폰을 모두 포맷 처리해야 했다. “디자이너가 단골 고객까지 전부 데리고 나가는 걸 막으려고, 고객이 문의해도 절대 디자이너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요.” 심지어는 퇴사 시 반경 2㎞ 안에서 재취업을 하거나 매장을 열지 못하게 한다. 헤어숍 원장들이 계약서상에 가장 먼저 적어 넣는 항목이다. 주머니를 털다 못해, 힘들게 쌓아온 지역 기반까지 탈탈 털어가는 꼴이다.


근로자로 대우해주든가, 프리로 존중해주든가 둘 중에 하나만 하세요

그간 뷰티업계는 ‘프리랜서’라는 신자유주의적 시류를 방패막 삼아 착취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장려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개인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소규모 매장’이라는 이유로 방임했다. 매장주에게 유리한 계약서는 언제나 손쉬운 탈출구가 된다. ‘그렇게 부려먹고 이 월급이 말이 되냐’고 항의해도, ‘약속했던 퇴직금은 어디에 있냐’며 열을 올려도 모든 잘못은 ‘이 따위 계약서에 서명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관행이 상식 이하인 곳에선 인성도 상식 이하가 되기 일쑤다. 원장들은 "원래 그렇다"거나 "나 때는 더했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미용이 너무 좋아서 시작한 친구들도 언제부턴가 미용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대요. 이유는 단순해요. 일 힘든 건 어찌어찌 참아도 생계 유지가 힘든 처우로는 버틸 수 없다는 거죠.” 지민씨는 스스로를 ‘위장 프리랜서’라 불렀다. “근로자 취급할 거면 근로자 대우를 해주고, 프리랜서 취급할 거면 프리랜서로서의 자유를 존중해주세요.” 지민씨의 말대로 ‘하나’만 하는 게 그리 어려울까.

2021년 현재도 헤어 디자이너 10명 중 7명 이상(75.6%), 스태프 10명 중 9명 이상(94%)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박지윤 기자
한아름 인턴기자
김지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