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쪽에 있는 망막은 카메라 필름처럼 눈에 들어온 빛을 신경 신호로 바꿔서 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망막 구조와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각종 시각 장애와 함께 시력이 떨어지다가 실명할 수도 있다. 이를 ‘유전성 망막 질환’이라고 한다.
유전성 망막 질환이 나타나면 색깔과 명암을 구분하는 시각세포가 파괴되므로 시력과 시야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대표적인 증상의 하나가 야맹증이다. 해가 진 후에 밤눈이 침침하게 어두워지거나 밝기가 어두운 실내에서도 시력이 현저히 떨어져 눈 앞 사물이나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또한 터널 안에 있는 것처럼 주변 시야가 점차 좁아지면서 가운데만 보이는 터널 시야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시야 바깥부터 어두워지다가 중심 시야까지 잃으면 실명에 이르게 될 수 있다.
문제는 유전 질환이기에 대부분의 유전성 망막 질환 환자가 출생 직후나 어릴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 평생 동안 시각 장애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실제 유전성 망막 질환 환자의 절반 이상이 16~18세에 법적 실명 상태에 이르고, 이후에도 질환이 계속 진행돼 결국 대부분 완전히 실명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한 유전성 망막 질환자는 보호자 도움 없이는 외출 등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고 학교ㆍ직장 등 사회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실명 두려움으로 사회적 고립까지 더해지면서 유전성 망막 질환 환자는 우울감ㆍ고립감ㆍ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김상진 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는 “유전성 망막 질환의 증상 발현 시기는 다양하나 어려서부터 나타날 수 있다”며 “시력 저하, 야맹증, 눈 떨림, 시야 협착, 사시 등 다양한 시각 기능 장애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따라서 어린 자녀에게서 이러한 증상, 특히 야맹증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망막 전문의를 찾아 망막에 대한 정밀 검사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동안 유전성 망막 질환은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증상의 진행을 일시적으로 늦추는 보존적인 치료만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첫 유전성 망막 질환 유전자 치료제인 ‘럭스터나(성분명 보레티진네파보벡)’가 지난 9월 국내 허가를 받았다.
럭스터나는 단 한 번 투여만으로 유전성 망막 질환의 근본 원인의 하나인 RPE65 유전자 돌연변이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해 시각 기능 자체를 개선할 수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유전자 치료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럭스터나 치료를 받은 환자의 절반 이상이 촛불 1개의 어두운 밝기에서 혼자 보행해 장애물 코스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시각 기능 개선 효과가 높았다.
김상진 교수는 “유전성 망막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첫 유전자 치료제가 국내 허가를 받은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실제 진료 현장에 도입돼 많은 유전성 망막 변성 환자들이 실명의 공포에서 벗어나 더 좋은 시각 기능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