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옛 연인 살해 사건이 잇따르면서 스토킹과 데이트폭력 범죄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들 범죄 피해자는 성폭력도 함께 당하지 않는 한 대한법률구조공단의 국선변호사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률구조공단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소송 지원 및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법률구조공단은 사이버 상담을 통해 '성폭력은 없었고 지속적인 스토킹과 데이트폭력을 당한 경우 공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뒤 "범죄 피해자의 경우 형사 절차에서 특정한 사건(성폭력 또는 아동학대 피해 사건 등)만 피해자 국선 대리인(변호사)이 선임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성폭력 등이 수반되지 않는 국선변호를 받을 수 없다고 답한 셈이다.
공단 관계자는 "스토킹 및 데이트폭력 중 성폭력과 관계없는 경우는 법률 상담은 가능하지만 피해자 변호 지원은 내부 규정상 어렵다"며 "제한된 인력이나 예산을 감안해 지원 대상을 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단 측이 언급한 내부 규정은 법률구조사건처리규칙이다. 여기엔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는 형사사건 범위를 △가정·소년·인신 등 각종 보호사건 △성폭력·아동학대·가정폭력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전엔 스토킹 피해 여성을 형사사건 피해자로 여기지 않았지만, 올해 4월 스토킹처벌법 제정으로 '스토킹은 범죄'라는 정의가 생겼기 때문에 관련 규정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는 주민등록을 가해자에게 공개하지 않을 수 있지만 스토킹·데이트폭력에는 이런 보호책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공단측도 "국선변호는 법무부(검찰)가 각 법률에 따라 피해자에 대해 지원해주는 제도인 만큼 스토킹 및 데이트폭력 피해자에 대한 국선변호를 지원하기위해선 입법이 필요하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