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맞춤' 해결책이라는 거짓말

입력
2021.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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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글 한 편이 화제에 올랐다. 한 언론사의 '시니어 문학상' 공모에서 입상한, 60대 작가의 '실버 취준생 분투기'라는 수기다. 분투기라는 이름처럼 내용은 파란만장하다. 취업을 원하는 작가는 자격증과 대학 학위, 경력을 적어 일자리 센터를 찾았으나 직원의 눈에 그 서류는 나이든 취준생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수식일 뿐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중졸'이라 적은 한 줄짜리 이력서를 내고서야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는 도입부는 아프도록 현실적이다.

그는 젊은 시절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주부로, 아내로, 또 엄마로 주어진 소임을 다했다. 나이가 든 후에도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 다녔다. 하지만 이혼을 겪고 다시 나온 사회는 그의 노력을 조금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맨바닥에서 다시 일어서야 했다.

중노동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잃지 않았다.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부침을 겪었지만 일흔을 앞둔 올해, 수급자가 되어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비로소 글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다는 마무리 문단을 보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일까. 글에 달린 댓글과 이 글을 공유하며 따라붙은 말들을 보고서야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이 글에 말을 붙인 이들은 직업도 나잇대도 다양했으나 감상은 비슷했다. 작가를 향한 찬사,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겪은 수난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탄식. 모두가 이 글에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겹쳐 보고 있었다. 글도 먹먹했으나 그 독자를 관통하는 감정이 '공감'이라는 것은 더 입맛이 쓴 일이었다. 60대 신인 작가의 글을 곱씹으면서 나는 우리가 모두 힘든 터널을 지나왔고, 그럼에도 여전히 앞날을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다시 '청년 맞춤 공약'이 쏟아진다. 어느 후보나 하는 말은 비슷하다. 청년의 불안감을 이해하고, '주택 규제, 젠더 갈등, 역차별'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식이다. 비겁하다. 이들이 짚는 것은 원인이 아닌 까닭이다. 문제의 뿌리는 전 생애를 관통하는 불안감에 있고 그 불안감은 경쟁에 시달리고 쉴 틈 없이 일해도 언제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에서 온다.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모두는 각자의 방법으로 몸부림친다. 20대는 '스펙'을 쌓고 은퇴 후를 걱정하는 30대와 40대는 빚을 내며,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50대는 퇴직금을 털어 음식점을 차린다. 그 과정에서 집값은 치솟고 관용은 사라지며 약자는 먹잇감이 된다. 수십 년간 심화되어 온 이 악순환에 대한 고민 없이 '청년 문제'를 추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고 땜질하는 20대의 불만은 곧 30대의 문제로 돌아오고 40대와 50대의 비극이 된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했다. 출간된 것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다가, 이 상을 받고 얼마 뒤 급작스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보았다. 화가 났다. 우리는 또 한 명의 재능 있는 작가를 잃었다. '청년 문제'를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는 이 작가의 비극을 '노인 빈곤' 또는 '경력 단절'의 문제로만 썰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 내게 가장 좋은 글을 보여 주신 이순자 작가님의 명복을 빈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