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절실한데 현실은 최악"... '한일관계 대타협' 지금이 적기다 [2021 코라시아포럼]

입력
2021.11.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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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스기야마 '외교의 복원' 화상대담]
"中 부상 탓, 한일 협력 필요성 커지는데
한일관계는 점점 더 과거에 매몰 악순환
임기 말 문재인 정부 관계 정상화 의지와 
日 새 내각 동력 교차하는 지금 풀어내야"

“당위와 현실이 동떨어져 있다.”

2021년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양국 두 베테랑 외교관의 우려는 정확히 일치했다. “미중 갈등, 경제안보 위기, 북핵 고도화 등 급변하고 있는 국제정세는 어느 때보다 한일 모두에 ‘전략적 협력’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과거에 매몰돼 있다”는 진단이다. 과거가 미래를 가로막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타이밍’에 대한 견해도 같았다. 일본의 새 내각이 들어서고,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과 스기야마 신스케 전 주미 일본대사는 25일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가 주최하고 ‘신(新)한일관계: 협력과 존중의 미래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열린 ‘2021 코라시아 포럼’에서 ‘외교의 복원’이라는 명제를 놓고 화상대담을 했다. 신 전 차관은 주일대사까지 지낸 국내 대표적 일본통이며, 스기야마 전 대사 역시 오래 기간 일본의 동북아 외교전략을 관장한 한국 전문가다.

"한일, 연말연초 타협점 찾아야 中 위협 막아"

스기야마 전 대사는 이날 대담에서 한일이 화해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로 ‘중국의 부상’을 꼽았다. 그는 “국제규범을 따르지 않고 힘을 이용해 자기 확장을 꾀하는 중국 견제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조차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한국과 쇠퇴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 번째 경제력을 갖고 있는 일본, 양국의 동맹인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통 분모를 토대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이라는 까다로운 상대의 비핵화를 위해서라도 한일ㆍ한미일 협력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신 전 차관도 “한일 협력 필요성은 정말 절실한데, 양자관계가 수교 이래 최악으로 떨어졌다”면서 “전략적 협력 필요성과 최악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해야 한다”고 공감했다.

두 사람은 ‘올해 말에서 내년 초’가 한일관계의 ‘대전환’을 꾀할 적기라고 내다봤다. “한국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뒀고,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 새 내각이 지난달 총선을 통해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했다”는 점을 근거로 이 기간 “한일관계를 리셋(resetㆍ재설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기 내 한일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와 임기 초 기시다 내각의 정치적 추진력이 만나면 교집합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스기야마 전 대사는 “기시다 정부는 한국의 차기 정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현 정부와도 새로운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사는 난제... 韓 "과거·미래 분리" 日 "한국이 변해야"

다만 악화된 한일관계를 초래한 결정적 장애물,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 해법에선 두 사람이 의견을 달리했다. 스기야마 전 대사는 “위안부 문제는 이미 기시다ㆍ윤병세 합의(한일 위안부 합의)가 해결점으로 제시돼 있다”며 “한국 정부 역시 인정하고 있는 만큼 여전히 건재한 합의”라고 주장했다. 그는 강제동원 이슈에 관해서도 “기존 확립된 국제법상 권리와 의무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한국 사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결했어도, 해당 판결이 국제법 영역인 한일 청구권 협정(1965년)을 앞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사법부 판단에 개입하라는 얘기다.

반면 신 전 차관은 정권이 바뀌어도 폐쇄적 태도로 일관하는 일본 측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에는 일본이 ‘과거사와 미래 협력 문제를 분리하자’는 이른바 ‘두 갈래 전략’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한국이 투 트랙을 강조하고 일본은 오히려 한국에 과거사 해법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역전됐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타협점을 마련하려면 일본 정부도 두 사안을 적절히 분리해 다뤄야 한다는 제언이다.

조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