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 지역의 난민 위기를 겪은 유럽연합(EU)이 이주민 밀입국에 연루된 업체를 겨냥한 새 제재안을 발표했다. 고의성 여부와 상관없이 난민 밀입국과 연관된 사실이 적발된 기업에 대해선, EU에서 받은 역내 운영 허가를 중단 또는 취소하거나 영공 및 항구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23일(현지시간) 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EU 행정부 격인 EU집행위원회(EC)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재 초안을 내놨다. 회원국 국경 지역으로 난민을 밀입국시키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업체가 대상이다. 일부 여행사가 비자, 항공권, 호텔, 국경으로 가는 택시 등을 포함한 일종의 '밀입국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게 EU 측의 설명이다. 따라서 밀입국과 관련돼 있는 모든 여행사와 운송회사 등을 제재 대상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EU 회원국과 유럽의회가 이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바 요하손 EU 내무 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제재안이 이주민 불법 유입을 막을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우리가 (이런 제재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며 "항공사들에게 현 상황을 이해시키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고 말했다. 각 업체들의 자발적인 개선 움직임을 기대한 셈이다. 실제 터키항공과 이라크항공은 EU 관계자들과 중동 정부가 이번 난민 사태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자, 벨라루스 수도인 민스크행 항공기 운항을 이미 제한한 바 있다.
최근 EU는 벨라루스와 심각한 난민 갈등을 겪고 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독재 정권이 EU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중동 이주민들을 EU 회원국의 국경으로 몰아넣는 '난민 떠넘기기'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게 EU의 주장이다. 최근 벨라루스가 임시 쉼터를 설치하고 일부 이주민을 본국으로 송환하면서 긴장 완화 국면에 들어가긴 했으나, 여전히 국경 지대에 수많은 난민이 남아 있는 상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의회 연설에서 "이주 위기가 아니라 민주주의 이웃 국가들을 불안정하게 하려는 (벨라루스) 권위주의 정권의 시도"라며 "이주민들이 그 끔찍한 거짓 약속에 속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제재안 추진과 함께 EC는 이번 난민 사태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3개 회원국(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의 국경 치안 유지를 위해 기존의 3배 수준인 2억 유로(약 2,676억 원)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