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명상을 '한류'로!

입력
2021.11.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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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자료에는 '국민소득 1만 달러부터 외국 여행을 하고, 3만 달러가 되면 자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한다'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도 3만 달러가 되면서, 자아 성취가 중요한 덕목으로 부각하는 모양새다. 취업이 어려워도 자기 발전이 없는 직장의 퇴사율이 증대하는 상황은 이를 잘 나타내준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웰빙이나 치유 또는 힐링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된다. 예전에는 어른이 숟가락을 들어야 밥을 먹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야 먹는 문화가 됐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개인 SNS에 올리는 현상도 개인의 만족과 성취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4차 산업 시대가 본격화되며, 선진국에서는 육체와 관련된 하타 요가를 넘어 명상이 대세가 되는 모습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는 이미 명상센터가 교회의 수를 능가했다는 통계가 있다. 물질에서 원두커피가 불과 몇 년 만에 전국을 강타했다면, 정신에서는 명상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명상 하면 동양 아니던가? 인도의 힌두교에 라자 요가나 불교의 관법(觀法) 같은 정신수행법이 있다면, 동아시아에는 선(禪)불교의 참선과 유교의 수양법이 존재한다. 특히 이 중에서도 한국의 조계종은 가장 주목된다. 왜냐하면 조계종이란, 불교 안에서도 선(禪)수행만을 표방하는 명상 종파이기 때문이다.

명상이라면, 인도나 동남아시아의 남방불교를 떠올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명상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식민지 지배학의 필요 때문에 유럽에서 연구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명상과 신비주의가 크게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에서 이들의 명상법은 그리 이슈가 되지 못한다. 즉 지속 가능한 효용성 입증에 실패한 것이다.

티베트불교의 수행법 역시 미국의 중국 견제 필연성과 더불어 미국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달라이라마가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이나, 할리우드에서 '리틀 붓다' '쿤둔' 등 티베트와 관련된 여러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오늘날 티베트의 수행법에 대한 선호는 약화하고 있다. 이보다는 뇌과학 등에 입각한 새로운 명상법이 만들어지는 추세다. 즉 티베트의 수행법에도 한계가 노출된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 선불교의 수행법은 이제까지 제대로 검토된 바 없다. 중국의 선불교가 공산화 과정에서 단절되었다면, 조계종의 수행 전통은 고려 말부터 오늘날까지 무려 700년의 전통을 유지하며 전승 중이다.

특히 조계종은 중국의 선불교 전통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고려 말 인도 승려로 스리랑카에서 선수행을 체득한 지공(Śūnyâdiśya)이, 고려로 와서 수행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조계종에는 인도·스리랑카·중국의 수행문화에 보조국사 지눌에 의한 한국적인 수행까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떤 수행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양성의 온축이라고 하겠다.

한류가 K팝을 넘어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외연을 넓혀 가고 있다. 이는 한민족의 역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력을 넘어 선진국으로 안착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문화 역량의 강화가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의 핵심에는 특징적이면서도 다양성을 겸비한 정신문화가 존재해야 한다. 한류의 핵심에 우리의 정신문화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정신문화 즉 K명상의 관점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된다고 하겠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