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초 만에 무너진 12년 만의 도전... 포항, ACL 결승서 알힐랄에 0-2 패배 준우승

입력
2021.11.2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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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가 12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정상 도전에 나섰지만 '호화군단' 알힐랄(사우디)에 무릎을 꿇었다.

포항은 24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 파드 스타디움에서 알힐랄과의 2021 ACL 결승전에서 0-2로 패하고 준우승을 거뒀다. 경기 시작 20여 초 만에 실점하면서 끌려간 게 뼈아팠다.

2009년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포항은 올 시즌 주축 선수 여럿이 이적하거나 부상당하고 외국인 선수 다수가 제 몫을 못하는 등 어려운 시즌을 보낸 끝에 12년 만에 결승에 올라 '기적'을 기대하게 했지만, 통산 4번째 우승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12년 전 선수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김기동 포항 감독은 사령탑으로서 첫 우승을 일구는 것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여 명의 알힐랄 팬들 앞에 선 포항은 초반부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경기 시작 직후 크베시치가 제대로 잡아놓지 못한 공을 나세르 알다우사리가 먼 거리에서 슈팅, 그대로 포항 골문을 갈랐다. 20여 초 만에 내준 실점이었다.

초반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가려던 포항은 이 실점 하나로 모든 게 크게 꼬였다. 실점 직후 포항은 더 경직됐고, 전반 10분이 넘도록 알힐랄의 기세에 밀려 자기 진영을 제대로 벗어나지도 못했다.

기세를 올린 알힐랄은 프랑스 대표 출신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경험한 바페팀비 고미스, 지난 시즌 웨스트브로미치 앨비언에서 EPL 11골을 넣은 마테우스 페레이라 등 호화 공격진을 앞세워 포항 진영을 몰아쳤다.

전반 13분이 지나자 포항도 조금씩 자신의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신진호가 날린 중거리 슈팅이 골대에 맞고 나왔고 이를 임상협이 재차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다.

기회를 살리지 못하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전반 21분 모하메드 알부라이크의 프리킥, 전반 24분 고미스의 터닝 슈팅 등이 위협적으로 이어졌다. 포항은 전반 45분 신진호의 프리킥을 권완규가 회심의 헤딩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0-1로 뒤진 채 전반전을 마친 포항은 후반 시작과 함께 크베시치와 이수빈을 빼고 전민광과 고영준을 투입했다. 하지만 양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후반 10분 페헤이라가 페널티아크 오른쪽에서 찬 프리킥 직접 슈팅이 골대를 살짝 빗나간 것을 포함해 골에 가까운 상황을 알힐랄이 더 많이 만들었다.

결국 포항은 후반 18분 추가 실점을 허용했다. 포르투갈 명문 포르투에서 뛰었던 무사 마레가가 고미스의 침투 패스를 받아 전민광과의 경합을 이겨내고 골 지역 오른쪽에서 날린 슈팅으로 골문을 갈라 6만여 관중석을 메운 홈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결국 포항은 20여 초 만에 내준 불의의 실점을 90분 내내 극복하지 못하고 0-2 패배를 맛봤다.

아쉬운 결과지만 준우승만으로도 시즌 초 기대를 웃도는 성적이다. 포항은 지난 겨울 ACL 출전권 획득에 기여한 주요 선수들 여러 명이 팀을 떠났다. 득점 2위 일류첸코는 전북현대로, 4위 팔로세비치는 FC서울로 떠났다. 든든하게 후방을 지켰던 베테랑 김광석도 인천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주전 공격수 송민규는 올림픽 출전 직후 전북으로 팀을 옮겼다.

결승전에서도 주축인 골키퍼 강현무와 미드필더 이승모를 한국에 두고 원정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강현무는 부상을 당했고, 이승모는 병역 관련 봉사 시간 미달로 출국하지 못해 이번 원정 선수단에서 빠졌다. 김 감독은 이승모 대신 크베시치를 투입하며 팔라시오스를 전진 배치하는 전략을 내세웠지만 결승전까지 '잇몸'만으로 승리를 따내기는 어려웠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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