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미국 주도의 전략 비축유 방출에 동참한다. 최근 급등한 국제 유가와 관련, 국제 공조의 필요성에 한미 동맹관계까지 고려된 행보로 풀이된다. 한국의 비축유 방출은 리비아 사태가 발발한 2011년 이후, 10년 만이다.
정부는 23일 미국이 제안한 비축유 공동방출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백악관도 성명을 통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유가를 낮추기 위해 비축유 5,000만 배럴 방출을 지시했으며, 미국 제안에 따라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인도 영국이 동참한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다른 주요 석유 소비국과 조율해 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첫 사례로, 인도는 500만 배럴, 한국과 일본은 일단 수일 분만 방출한 뒤 이후 추가 방출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동맹의 중요성과 주요 국가들의 참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미국의 비축유 방출 제안에 동참하기로 했다”며 “비축유 방출 규모와 시기, 방식 등은 추후 구체화될 예정이지만 과거 국제에너지기구(IEA) 국제 공조에 따른 방출 사례와 유사한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 사태가 발생했던 10년 전, IEA 국제 공조 속에 우리나라는 당시 비축유의 약 4% 수준인 347만 배럴을 시장에 내놓은 바 있다.
정부는 비축유 방출에도 IEA 국제기준에 따라 100일 이상 지속 가능한 물량을 보유할 수 있어, 비상시 석유 수급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비축유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8월 말 기준, 전국 9개 지역에 비축된 석유 물량은 9,700만 배럴(공동비축물량 제외)에 달한다. 이는 추가 석유 수입 없이 국내에서만 100일 넘게 사용 가능한 물량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방출계획이 세워지면 30일 이내에 비축유가 방출되는데, 미국 요청 시 국가 간 협의로 결정할 것으로 본다”며 “정책대여분 비축유는 보통 1년 내 채워진다”고 전했다.
앞서 비축유 방출을 시작한 중국을 비롯해 이번 미국 주도의 비축유 방출이 시작되면 일단 국제 유가가 일시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이 전략적 비축유 방출을 승인한 것은 1991년 걸프전과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2011년 리비아와의 전쟁 때까지 3차례 있었다”며 “가장 최근인 2011년 방출 당시 유가가 일시적으로 떨어진 건 맞다”고 앞선 사례에 대해 설명했다. 이 경우 국내에선 내년 4월까지로 예정된 한시적 유류세 20% 인하와 겹쳐, 한시적으로나마 유가 하락 효과는 더 뚜렷해질 전망이다.
다만, 비축유 방출 효과가 단기간에 그칠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협회 관계자는 “비축유 방출은 시장에 일시적인 자극을 줄 수는 있지만, 산유국의 증산이나 소비억제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결국 국제유가는 원상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2011년 리비아 사태 이후에도 비축유 방출 한 달 이후부턴 방출 전보다 더 높은 가격에 원유가 거래됐고, 이번엔 중국이 이미 비축유 방출을 시작한 상황에서 미국과 함께 비축유 방출에 동참한 국가들이 향후 ‘비축유를 구매한다더라’는 얘기만으로도 유가가 또 올라갈 수도 있단 얘기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산유국들이 미국 주도의 비축유 방출 계획에 대한 맞대응을 예상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질 것으로 관측했다. 실제 지난달 80달러를 웃돌며 급등세를 보였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글로벌 재확산 여파 등으로 최근 지속적인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이외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가 전략적 비축유 방침에 반발하고 증산 계획도 재고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진 전날 배럴당 76.75달러로 1.07% 오르면서 꿈틀대는 모습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 물량 전체를 수입하는 우리나라 사정을 감안할 때 비축유 방출 이후 유가 하락이 지속될 경우 국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도 점쳐지지만, 반대로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 경우엔 더 비싼 값에 비축유를 채워 넣어야 해 부담은 가중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