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發) 난민 문제로 유럽연합(EU)과 갈등을 빚었던 벨라루스 정부가 이라크 난민을 고국으로 송환하고 임시 난민촌을 철거하는 등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유럽 난민 갈등 사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한 달 넘게 국경을 넘지 못한 한 살배기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되는 등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 여부를 두고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18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벨라루스 당국은 폴란드와의 국경 지대에 있던 이라크 난민 431명을 고국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라크 외교부는 난민 수송 여객기가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출발해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경유, 바그다드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했다. 벨라루스 정부는 전날 인근 창고를 쉼터로 개조한 뒤 남은 난민 1,000여 명을 수용하고 음식 등을 제공했다. 알렉산더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 대변인은 “남아 있는 난민들이 떠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지만, 우리는 (송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지난 16일 국경 지대에서 수천 명의 난민과 이를 저지하려는 폴란드 간의 격렬한 충돌 이후 이뤄졌다. 면도칼과 도끼 등으로 국경 철조망을 뚫고 진입하려는 난민들에게 폴란드 국경 수비대는 물대포와 최루탄 등을 쏘며 맞섰다.
양측의 무력 충돌이 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독일이 서둘러 개입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루카센코 대통령과 17일 통화하고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난민들이 독일 등 다른 EU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주의 회랑’을 열어 달라고 벨라루스 당국이 요청했지만, 폴란드 등의 반발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메르켈 총리에게 폴란드의 주권적 사항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이 난민 일부를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독일 정부는 18일 “(벨라루스의) 압력에 굴복해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다만 양측은 이날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협상을 하기로 합의했으며, 국제인권단체 등을 통해 난민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가까스로 갈등이 봉합됐지만, 폴란드 국경 지대에서 한 살배기 시리아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난민 문제와 관련한 근본적 해결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영리단체 폴란드국제원조센터(PCPM)는 18일 폴란드 국경 지대 숲에서 구조 요청을 받고 시리아인 부부와 한 살 된 아들을 발견했다. 부부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아이는 숨졌다. 이 가족은 한 달 넘게 숲에서 머물러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최악의 순간은 넘겼지만, 유럽이 벨라루스가 촉발한 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고 전했다. EU집행위는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한 난민들을 돕기 위해 17일 70만 유로(약 9억3,000만 원) 기금을 긴급 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