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해체"까지 외쳤던 이재명... 재난지원금 회군 배경은?

입력
2021.11.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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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예산·추경 등 쉽지 않은 현실적인 벽
여론 반대 무릅쓸 경우 정치적 부담 커
'분명한 원칙, 유연한 실행' 이미지 부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기획재정부 해체'까지 거론하면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밀어붙여 왔다. 그러던 이 후보가 18일 "더는 고집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대표 정책을 전격 철회한 배경에는 재원 마련의 어려움과 지지율 정체라는 현실적인 벽에 직면해서다. 더욱이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당정갈등이 정쟁의 한복판에 놓인 상황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본예산·추경 쉽지 않아... 박완주 "과세이연해도 부족"

민주당이 철회 배경으로 밝힌 것은 예산 부족이다. 1인당 20만 원씩 재난지원금을 준다고 가정하면 국비 기준 약 8조1,000억 원이 소요된다. 내년 초 전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기 위해선 현재 심사 중인 내년도 본예산에 반영하거나, 올 연말 또는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민주당은 정치적 부담이 적은 내년 본예산 편성을 우선순위로 추진해 왔다. 올해 걷을 세금을 미뤄뒀다가 내년에 걷는 과세이연(세금납부 유예)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단 구상이었다. 그러나 과세이연은 국세징수법상 요건이 까다롭고, 막상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정부와의 합의하에 결정한 지난 8월 과세이연만으로는 필요 재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틀 전 윤호중 원내대표가 기재부의 초과세수 과소추계를 이유로 국정조사까지 거론한 것을 감안하면,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를 의식한 듯,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이날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 철회 후 "과세이연 금액 중 40%는 지방교부세로 줘야 하고 일부는 유류세 인하에도 사용될 예정이라 실제 가용할 자원이 2조5,000억 원을 조금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 후보도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전 박 의장으로부터 초과 세수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현 상황에서 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을 경우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강행하려면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금액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전격 철회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대표정책 철회'는 상처, '유연성 발휘'는 기회

재원 마련뿐 아니라 이 후보가 처한 정치적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은 그다지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 7일 실시된 SBS·넥스트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4.4%가 전국민 지급 방식의 재난지원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가뜩이나 대선후보 선출 이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최근 지지율마저 정체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추진은 지지율 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후보 측 중진의원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소상공인 50조 원 지원'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후보 역시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소상공인 지원 강화를 추진하자는 입장이지만, 한정된 재원을 두 곳에 나눠 쓰려면 한쪽의 확실한 지원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물론 야당과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신속 지원'이라는 대의까지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일각에선 이 후보의 철회 결정이 지지율 정체와 맞물려 정치적 타격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은 이번 회견이 오히려 '불안한 후보' '저돌적 정치인' 등의 이미지를 전환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이 후보의 최측근이자 선대위 공동 총괄특보단장인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철학과 원칙은 분명하지만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현실 여건에 맞게 유연하게 한다"며 "역시 이재명답다"고 평가했다.

대선의 캐스팅보터인 중도 민심을 잡을 수 있는 유연함을 발휘했다는 게 선대위의 자체 평가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도 "정부와 부딪치다가 상처만 입는 것보다 '결과를 내는 성과주의자'임을 보이자는 이 후보의 결단"이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홍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