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례(55)씨는 걸어다니는 ‘종합 학원’이다. 구몬학습 교사인 김씨는 국영수는 물론, 중국어·일본어·한자까지 가르친다. 하루 방문가정 열두 집,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시작되는 일정은 오후 2시부터 늦은 밤까지 꽉 채워져 있다. 이 집에서 나오면 바로 저 집으로 직행. 금세 축축해지는 마스크를 갈아 쓸 시간도 부족할 정도니 저녁식사는 꿈도 못 꾼다. 집으로 돌아와도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가방 속에 켜켜이 쌓인 문제지들을 식탁 위에 쏟아붓고 빨간펜을 든다. 아직 채점이 남았다.
김씨는 막내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습지 일을 시작했다. 일은 고됐지만, 아이를 좋아하는 그에겐 가르치는 일이 하루하루 감사하고 보람찼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회사를 다녔으면 ‘과장님’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베테랑 선생님이 된 지 오래지만 ‘경력’이란 말을 써 본 적은 없다. 자신에게도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당장 다음달 월급이 얼마 나올지 예측도 못하는걸요. 10년을 한 회사만 다녔는데 당장 내일 그만둬도 퇴직금은 한 푼도 없어요. 왜냐, 나는 구몬의 노동자가 아니니까요.”
약 10만 명, 10명 중 9명은 여성, 평균 월급 170만 원. 대한민국 학습지 교사들에 대한 통계(2018년 기준)다. 이들 중 회사에 고용돼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구몬, 재능, 대교, 웅진 등 학습지 회사는 교사들과 1년짜리 단기 계약을 맺고, 각자 맡은 회원 수에 따라 회원비의 일부를 수수료로 지급한다. 일명 ‘특수고용직’, 교사 한 명 한 명이 개인사업자다. 경쟁 최전선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하지만, 위기의 순간엔 가장 먼저 버려지는 ‘꼬리 노동자’, 학습지 교사들의 일터를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따라가 봤다.
김미례씨의 월급은 매번 바뀐다. 수십만 원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실적에 따라 수수료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회원을 잃으면 수수료율이 낮아지고, 유지하고 있는 다른 회원에 대한 노동의 대가도 하락한다. 지난달과 똑같이 가르쳤어도 가져가는 몫은 더 적어지는 셈이다.
학습지 교사들은 회원 이탈을 ‘퇴회’, 회원 유입은 ‘입회’라고 부른다. 매달 입회와 퇴회의 균형을 맞춰 ‘0’을 만드는 것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그만두기도 쉬운 학습지 특성상, 쉴 틈 없이 영업을 뛸 수밖에 없다. 감소분을 메우기 힘들 땐, 자신이나 가족 앞으로 ‘가짜 회원’을 만든다. 자신이 제공하는 노동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제 지갑을 여는 꼴이다. 그러니 집에 손도 안 댄 ‘내돈내산’ 학습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간다. 일주일에 세 번씩 사무실로 일제히 출근해 참석해야 하는 회의에선 매주 ‘이주의 일잘러 선생님’ 사례가 자랑스럽게 전시된다. ‘일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은 하나다. ‘회원수를 얼마나 많이 늘렸는가’.
수수료율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실적에 연동된다는 점에선 대개 같다. 4년 전, 구몬은 회원 증감률에 따라 수수료가 더 큰 폭으로 차등지급되도록 제도를 고쳤다. “이 모델은 2007년 당시 재능교육에서 시행했다 교사들의 거센 반발로 폐지된 안이에요. 과열된 실적 압박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느낀 교사들이 줄퇴사를 했고, 사측이 결국은 철회했죠.” 23년차 재능교육 교사 여민희(48)씨는 ‘나쁜 선례를 그대로 베껴 적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재능교육은 구몬보다 사정이 낫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사업국에서 실적이 부진한 지국 관리자들을 오전 7시부터 불러서 산행을 시켰어요. 일종의 ‘열등생 망신주기’였죠. 새벽 회의에 차출해서 질책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관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선생님들을 압박하는 거죠.” 과목별로 전문교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부여하는 3%의 인센티브 수수료도 ‘전달 대비 입회+1’이 있을 때에만 허락하기 시작했다. “전문교사 자격시험이 매우 까다로워요. 오래 준비해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 들인 노고에 보상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또 실적 조건을 내걸고 있으니 힘이 엄청 빠지죠.”
회사의 간섭엔 성역이 없다. 교사들은 닦달당한다. “심지어는 가짜 회원으로 등록해서 내는 학습지 회비가 실적을 채워서 받는 월급 상승분보다 더 많아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죠. 왜 자기 돈을 더 써 가며 가짜회원을 만들까요? 관리자들의 모욕이나 비난이 사람을 무너지게 하거든요.”(여민희) 계약 맺고 일하는 개인사업자라면서 회원 못 가져오는 교사는 지부 전체의 실적을 깎아 먹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다.
"그렇게 어리버리하고 무능해서야 식당 나가 설거지도 못 한다"는 폭언은 물론, 실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담당 구역을 빼앗아버리기도 한다. 회원들이 그만두는 사연은 다양하건만, 관리자들은 ‘다 네가 못한 탓’이라며 교사를 힐난한다. “재개발로 인해 한꺼번에 이사를 간다든지, 건강이나 신변상의 이유로 그만두는 경우도 정말 많은데 이유는 언제나 하나예요. 당신이 회원을 못 지킨 거다.” 참다 못해 일을 그만둘 때는 마지막 몇 달간의 급여가 한 푼도 없거나 적자가 찍히는 교사들도 많다. 가짜 회원들을 털고 나면 그렇게 된다. 빚을 떠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있다.
대교 눈높이의 경우 1년마다 맺는 재계약에 ‘보이지 않는 심사’가 있다. “회원관리, 학습 서비스, 교실 경영 등 항목별로 평가요소가 있어요. 회원 학부모가 한 번이라도 서비스에 대해 문제를 삼으면, 바로 점수가 깎이죠. 점수가 미달이면 재계약을 할 수 없고요.” 25년차 대교 눈높이 교사 이성주(52)씨는 ‘학부모의 말 한마디’에 생계가 달렸지만, 정작 학부모의 갑질엔 뾰족하게 대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방문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으면 학습지를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거든요. ‘수업을 못 받았으니 학습지도 환불하겠다’고 요구하면 전부 교사가 물어줘야 해요.”
학습지 교사들은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도 처리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가는 지불되지 않는다. 재능교육 여민희씨는 매주 세 번씩 사무실로 출근한다. “출근은 의무지만, 출근 수당은 따로 없어요. 새로 나온 학습지 상품에 대한 개괄적인 교육을 받고, 실적을 더 올릴 수 있는 전략을 짜요.” 홍보물을 만드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관리자가 홍보물을 만들어 교사에게 배포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흔치는 않다. 교사들은 저마다 자신의 전단지에 사탕이나 연필, 지우개 등의 작은 사은품을 붙여 나눠 준다. “그냥 드리면 죄송스러우니까요. 이것도 다 제가 사는 거예요.” 구몬은 사무실 출근을 빼먹거나 회의에 불참할 경우 수수료를 1%씩 깎는다.
학생이 수업을 펑크 내면 학부모는 대개 ‘보충수업’을 요구한다. 자가 격리 학생들에겐 ‘화상 수업’을 해줘야 한다. 15분 단위로 스케줄이 빼곡히 잡혀 있는 평일엔 도저히 짬을 내기 힘들어, 보충수업도 화상수업도 모두 쉬는 날에 몰아서 한다. 진도 상담 전화, 상담 일지 작성, 신입직원 교육부터 해도 해도 안 끝나는 채점까지 모두 선생님들의 몫이며 ‘무급’이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항상 듣는 말이 있어요. ‘당신들은 선생이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명감을 가져라’ 처음엔 곧이곧대로 들었는데, 실은 그 말을 내세워 무급노동을 밀어내죠.”(김미례) 일명 ‘사명감 페이’다. 이렇게 주입된 사명감으로 교사들은 수업용 태블릿 PC까지 자비로 구매해야 한다. 실은 학습지 교사들을 회사의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기 위한 ‘꼼수’다.
코로나19가 강타한 지난 2년은 방문노동자인 학습지 교사 모두에게 특히 고된 시간이었다. “출입문 열자마자 몸 전체에 소독약 세례를 받은 적도 있어요. 걱정되는 부모 마음은 이해하지만, 참 힘들더라고요.” (여민희) 아무리 목이 타도 마스크를 벗고 물을 마실 수 없다. 화장실은 오직 ‘손 씻을 때’만 들어갈 수 있다. 손 씻는 건 내 아이를 위한 일이지만 다른 것은 아니니까. 일터의 환경은 더 혹독해졌는데, 코로나19로 인한 회원 급감의 타격까지 홀로 감내해야 했다. 전국의 학습지교사 6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7%가 ‘수입이 30% 이상 감소했다’고 대답했다.
방역비 역시 교사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2020년 1년간 회사로부터 마스크를 30장 이상 받았던 사람은 전체 12.5%에 불과했다. 품귀 현상으로 마스크 가격이 고공행진했던 지난해 상반기엔 한 달 사이에 마스크 값만 ‘23만 원’씩 쓴 교사도 있었다. 선생님 대부분이 백신은 휴가기간에 맞았다.
지난 2018년 6월 대법원은 특수고용직인 재능교육 학습지교사가 노조법상 ‘노동자’라는 판결을 냈다. 그간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던 재능교육의 노동조합은 이 판결을 계기로 단체 협약 교섭권을 인정받게 됐다. 1999년 노조가 생긴 지 딱 20년 만, 법원에 소송을 낸 지 7년 만이었다. 이 판례를 근거로 이후 대교 노동조합 측이 제기한 소송에서 역시 법원은 대교 학습지 교사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했다.
한번 힘들게 ‘전례’를 만들면, 업계 내의 다른 모든 이들이 함께 수혜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김씨는 구몬의 교사들은 끝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본사는 늘 재능이나 대교를 ‘같은 학습지 업계’라고 이야기하면서 비교하거든요. 다른 회사 교사들은 노동자로 인정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안되냐고 되물으면 말이 바뀌어요. ‘다른 회사 사정’을 갖다 댄다고요.”
학습지 교사들은 입을 모아 묻는다. ‘이것은 왜 노동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20년을 넘게 한 회사를 성실히 다니고도 퇴직금 한 푼 받을 수 없는 세상이 과연 맞는 세상이냐고.
“사람들은 생각해요.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내 아이는 반드시 공부 잘해서 정규직, 전문직이 될 거야. 저런 대접 따위 받지 않아. 세상에 이런 형태의 노동이 점점 많아지고 있단 사실은 모르죠. 용인되고 받아들여지다 보면 결국 우리의 아이들도 이런 대접밖엔 못 받게 되지 않을까요?” (김미례)
⑴화 : 일할 땐 노동자, 책임질 땐 사장... 방문점검원의 하루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02211050002973 (링크를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2)화 : 피자집 김 사장은 어쩌다 '1억 짜리' 프랜차이즈의 노예가 됐나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0411330004292 (링크를 클릭하면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