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고공행진에 칼 빼든 바이든… 규제당국에 "정유사 불공정 거래 조사하라"

입력
2021.11.18 09:29
"정유업체 反소비자 행태, 기름값 상승으로 이어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고유가 잡기에 칼을 빼 들었다. 규제당국에 정유 업체들의 불공정 거래 조사를 요청하면서다. 좀체 잡히지 않는 물가상승(인플레이션) 탓에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강수를 둬서라도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인 유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정유회사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FTC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유사하게 독과점과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조사권한을 갖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유회사의 ‘반(反)소비자’ 행태가 기름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리나 칸 FTC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정유제품의 공장 가격 하락에도 휘발유 소비자가격 상승은 계속되고 있다”며 “위원회는 기름가격 상승에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살펴볼 권한을 갖고 있다. 즉각 행동에 나서리라 믿는다”고 언급했다. 또 지난달 기준 비정제유 가격은 5% 하락한 반면 휘발유 소비자가는 3% 올랐다며,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큰 차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FTC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1월 집권 만 1년을 맞는 바이든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인플레이션, 공급망 마비 사태까지 겹치며 국정 동력을 잃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선 내년 중간선거에 대한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소비자 민감도가 큰 기름값을 잡기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무의식적으로 넘기기 쉬운 일반 소비재 가격과 달리 휘발유 가격은 주유소마다 크게 공지해 눈에 쉽게 띈다. 게다가 차 없이는 사실상 이동이 어려운 미국인들에게 고유가는 피부에 와 닿는 물가 지표이기도 하다.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일수록 외곽에 거주, 기름값에 민감하다는 점도 바이든 대통령이 서둘러 행동에 나서게 한 이유로 분석된다.

실제 이날 기준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평균 3.41달러다. 1년 전(평균 2.12달러) 대비 60% 넘게 뛴 셈이다. 일단 바이든 대통령의 ‘엄포’가 먹혀드는 모양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2.97% 급락한 배럴당 78.3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7일 이후 최저치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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