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미적분이 필요한 시간

입력
2021.11.18 15:00
15면
스티븐 스트로가츠 '미적분의 힘'

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후덥지근한 늦여름 밤이었다. (지금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 물리학자가 낀 술자리에서 문과 출신 누군가가 자신은 고등학교 때 미분만 배웠다고 고백했다. 놀란 물리학자가 이렇게 반문했다. "미분은 알고 적분을 모른다는 말이 내게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는 아는데 줄리엣은 모른다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리네요."

미분과 적분을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유한 그 물리학자의 감각에 모두 웃었지만, 나도 덩달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미적분 특히 미분이 어려웠다. 무한에서 미분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암기만 했으니, 미분의 부록 같았던 적분까지 덩달아 어려워졌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게 미적분학을 패스하고 나서 얼마나 기뻤던지.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적분 따위는 전혀 필요 없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술자리에서 상대가 취했는지 확인하고자 적분 문제를 내는 물리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물리학의 핵심 개념을 귀동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미적분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는 그토록 아리송했던 미적분의 원리가 나한테 와 닿은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원리가 이해가 안 되어 답답하던, 그래서 공식을 암기해서 문제 풀기에 급급했던 내용이 하나둘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배움에는 때가 있구나.' 스티븐 스트로가츠의 '미적분의 힘'(해나무 발행)이 나오자마자 대뜸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 책은 미적분의 기원부터 현재까지를 흥미진진하게 살피고 있다. 책의 원제(Infinite Powers)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무한(Infinite)'의 아이디어가 세상에 왜, 어떻게 등장했는지부터 시작해서 현대 미적분의 형성 과정을 차근차근 살핀다. 그 과정에서 아르키메데스부터 뉴턴과 라이프치히에 이르는 미적분 탄생에 공을 세운 매혹적인 과학자 이야기도 펼쳐진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훑어보고서 여기저기 등장하는 수식에 겁먹은 독자가 있다면 안심하시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눌 수만 있으면 책을 읽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적분 책인데 거짓말 말라고? 정말이다. 책의 중간까지, 즉 아직 미적분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대단한 수학자도 사칙연산을 쓸 수밖에 없었으니까.

저자와 함께 수천 년간 인류가 던져온 여러 질문에 답하다 보면, 심지어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도 미적분의 핵심 원리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복잡하고 변화하는 세상을 파악하는 도구로 미적분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고 나면, 리처드 파인먼의 다음과 같은 말에 고개도 끄덕일 테고. "미적분을 배워두는 게 좋아요. 신이 사용하는 언어니까요."

이참에 저자 스티븐 스트로가츠의 이름도 기억하자. 자신을 응용 수학자로 소개하는 저자는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유명한 과학자다. 현대의 과학 고전이 된 '동시성의 과학, 싱크'(김영사 발행)나 "영화 코너보다 더 인기 있는 수학 칼럼"이라는 뉴욕타임스 지면의 글솜씨는 이 책에서도 빛나다 못해 눈이 부시다.

이렇게까지 권하는데도 여전히 수학 때문에 기가 죽어서 책을 펼치기 겁나는 독자도 걱정할 일이 없다. 안 읽으면 그만이다. 소설가 스티븐 킹이 했던 말을 살짝 비틀자면, 수학이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삶이 수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더구나, 자기가 수학 좀 안다고 뽐내는 사람 가운데도 평소에 헛소리만 늘어놓는 사람이 여럿이다. 음, 곧바로 두 명이 떠오른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강양구 지식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