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선우(34)씨는 지난 11일 말로만 듣던 '심야 택시 전쟁'을 제대로 체험했다. 서울역 근처에서 회식을 마친 김씨는 오후 11시 30분쯤 공덕동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기다렸지만 전혀 잡히지 않았다.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으로도 호출했지만 '배차에 실패했다'는 화면만 반복해서 뜰 뿐이었다. 김씨는 "15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택시가 잡히지 않아 1시간 만에 겨우 집에 도착했다"고 하소연했다.
이달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식당 영업이 24시간 가능해지면서 '심야 택시 대란'이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선 택시 호출앱 대기만 30분이 넘는 것은 기본이고, 운 좋게 탑승해도 원래 요금의 5배를 내는 프리미엄 택시도 각오해야 한다. 갑자기 택시 이용 수요가 급증하면서 빚어진 현상이지만, 장기 불황으로 택시 기사들이 업계를 떠난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위드 코로나'에 연말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에선 심야 택시를 잡으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1일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김세은(17)양은 "최근 신사동에서 자정 넘어 택시를 잡으려다가 새벽 3시 30분에 겨우 탄 적이 있다"고 걱정했다.
택시 호출 앱을 동원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학생 김성호(20)씨는 이날 종로구에서 오후 10시쯤 모임을 끝내고 택시를 타려다 결국 걷기를 선택했다. 택시 호출 앱을 아무리 동원해도 잡히지 않자 택시 승강장이 마련된 서울역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30분을 걸어 서울역에 도착했지만 김씨처럼 택시를 잡지 못해 몰려든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는 "택시 잡기가 수강신청보다 치열한 것 같다"며 "종로에서 걸으면서 호출만 수십 번 했는데 이러다 걸어서 집에 도착할 판"이라고 말했다.
택시 대란을 틈타 기사들이 승객을 상대로 운행 거리를 재고 따지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 홍대 앞에 거주하는 류모(35)씨는 "자정 무렵엔 택시들이 콜을 받지 않고 정차해서 호객을 한다"며 "사람들이 창문 틈으로 목적지를 외치고, 기사가 마음에 들면 태우고 아니면 가만히 있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상식 밖의 웃돈을 지불하는 시민도 늘었다. 류씨는 "택시가 하도 안 잡혀서 1만3,000원 나올 20분 거리인데 '프리미엄' 택시를 잡아 6만 원을 냈다"고 전했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최근 들어 야근 끝내고 일반 택시를 호출해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며 "기본 요금의 2배를 더 받는 택시가 호출 앱 상단에 뜨면 그것이라도 누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택시 대란은 코로나19 여파로 기사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피크 타임'이 사라지면서 회사에 사납금을 매일 내야 하는 법인택시 기사들이 업계를 떠난 것이다. 실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이어지던 지난 8월 기준 전국 법인택시 운전자는 7만7,934명으로 집계돼,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2월(10만2,320명)보다 2만4,000명 이상 감소했다.
심야시간대에 영업하던 기사들 상당수가 이미 다른 업종으로 눈을 돌렸다. 택시 기사 함종수(61)씨는 "기사가 한때 200명이 넘던 택시회사가 지금은 100명 수준으로 감소했다"며 "기사들이 살길 찾아 주로 배달이나 택배 화물 등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택시 가동률이 시민들 수요를 맞추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는 15일 택시 승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개인택시 운행 3부제를 16일부터 일시 해제하고, 법인택시 종사자를 확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