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0일 이재명 대선후보가 제안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방역지원금) 지급을 위한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10조여 원 규모의 방역지원금 예산 반영을 요구했다. 내년 1월 1인당 20만~25만 원을 주는 게 목표다. 올해 정부 예상보다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7조~8조 원 세금 납부를 6개월 정도 미루는 방식으로 이를 내년 세입에 편입, 재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특정 사업 재원을 마련하려 세금 징수를 미루는 건 전례가 없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설득 논리로 “마스크를 계속 쓰면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KF94 마스크가 (하나에) 500원이니 (500일을 쓰면) 25만 원 정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민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6, 7일 SBSㆍ넥스트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후보의 추가 재난지원금 제안에 39.1%가 “추가 지급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선별 지급”(35.3%)과 합치면 응답자 74.4%가 ‘이재명표 재난지원금’을 거부한 셈이다. 같은 날 실시된 한국경제ㆍ입소스 조사에서도 77.3%가 반대했다. 지난해 4월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추진됐을 때 찬성(58.2%)이 반대(36.6%)를 압도(리얼미터 조사)했던 것과 완전히 딴판이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과거엔 정부가 재난지원금에 반대해도 민심이 어느 정도 받쳐줘 추진 동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당이 완전히 고립된 모양새”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민심 역행’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돈 풀기에 나선 배경은 뭘까. 우선 자당 대선후보의 ‘1호’ 공약을 당이 외면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지난달 29일 재난지원금 카드를 처음 꺼낸 이 후보는 연일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이 온당한가”라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도부의 한 의원은 “이 후보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당이 발을 빼면 후보가 입을 정치적 타격이 너무 크다”면서 “일단 추진하되 ‘방역 지원 용도이고 추가 재원 부담은 없다’는 걸 강조해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공학’도 반영됐다. 민주당은 지난해 4ㆍ15 총선을 앞두고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확정했다.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당 안에서는 “재난지원금 덕을 봤다”는 얘기가 나왔다. 여기에 여야, 정부 입장이 갈리는 재난지원금 정국을 조성해 이 후보를 둘러싼 대장동 의혹에 쏠린 관심을 환기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당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논란이 커져도 당이나 후보 모두에게 나쁠 건 없다”고 자신했다.
물론 역풍을 우려하는 당내 목소리도 작지 않다. 한 재선 의원은 “국민 절대다수가 공감하고, 사안 자체도 더 시급한 소상공인 손실 보상 이슈를 먼저 밀어붙어야 했는데 야당에 의제를 빼앗겼다”고 비판했다. 또 재난지원금 이슈는 이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청년 표심 공략에도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재난지원금 반대 비율은 70%에 육박한다. 이 후보의 ‘포퓰리스트’ 이미지만 더 강화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배경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최근 이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확대된 현상을 국민의힘 경선 컨벤션 효과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면서 “이 후보와 민주당이 다수 민심과 거꾸로 가는 ‘축소 지향’ 정치를 하고 있는 것도 약세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