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과학도들의 '날개'가 된 과학자

입력
2021.11.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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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ia Chaudhri(1978.1.25~ 2021.10.5)

지난 9월 23일 오전, 캐나다 맥길대 의료센터 완화병동 병실에서 조촐한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병상의 댄서는 말기 난소암을 앓던 콩코르디아(Concordia)대 신경과학자 나디아 초드리(Nadia Chaudhri)였다. 동료 교수 크리스타 바이어스하인라인(Krista Byers-Heinlein)과 함께 한 그 15초 공연을 위해 초드리가 고른 곡은 신디 로퍼의 노래 'Girls just want to have fun'. 그는 "(노랫말처럼) 나와 친구도 지금 즐기는 중"이라며 "여러분의 기부가 저를 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ConcordiaShuffle'이란 해시태그를 달아 트위터에 썼다.

'콩코르디아 셔플'은 그 대학 구성원과 동창들이 두 캠퍼스 사이 6.5km를 함께 걷는 장학기금 모금 행사. 올해 주제는 여성과 이민자, 가난한 유학생 등을 위해 신설한 장학금 '나디아 초드리 윙스팬 어워드(Nadia Chaudhri Wingspan Award)' 기금 모금이었다. 두 다리로 서는 것조차 버겁던 초드리도 병동 복도를 걷는 것으로 셔플에 동참했다. 그는 집에 들러 할로윈 박스에서 마녀 모자 등 소품들을 챙겨와 매일 오전 코믹 패션쇼 같은 셔플을 11차례 선뵀고,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자 대안으로 내놓은 게 침상 댄스였다. 그 춤이 그의 마지막 셔플이었다.

만 17세,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혼자 가방 달랑 두 개 들고 파키스탄서 미국으로 유학 와서 숱한 차별과 편견을 견디며 어렵사리 교수가 된 그였다. 평소 그는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에게 자신이 겪은 역경의 일부나마 덜어주고자 애썼고, 암이라는 치명적인 복병을 만난 뒤부터 다못한 삶의 숙제를 해내듯 더 혼신을 기울였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의 고립 속에서 암과 싸우며 트위터로,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의 전공 학회 참가 비용 모금 캠페인을 벌여 목표액(5만 달러)보다 네 배 넘게 모았고, '윙스팬 어워드' 모금에선 세계 60여개 국 9,000여 명으로부터 1990년 '콩코르디아 셔플'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65만 달러를 모았다. 그 작은 씨앗들이 날개로 돋아 어려운 처지의 여성-소수자 청년 과학도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돼주기를 바랐다. 그 마지막 소원을 자신의 날개로 삼아 그가 10월 5일 세상을 떴다. 향년 43세.

교수들이 써준 책 한 권 분량의 추천서

2015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교육개발정상회의는 파키스탄을 세계 최악의 교육 후진국 중 한 곳으로 지목했다. 여성은 더 취약해서, 2018년 파키스탄 정부 발표에 따르면 초등학교 여학생 59%가 졸업 전에 중퇴하고 중학교를 졸업하는 이는 13%에 불과했다.

나디아 초드리는 행운아였다. 파키스탄 수도 카라치에서 의사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의 두 딸 중 장녀로 태어난 그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던 부모 덕에 교육 기회를 한껏 누리며 성장했다. 그는 고향서 그래머 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프랭클린&마셜 칼리지 전액 장학생이 됐다. 4년 뒤인 1999년 5월 지역 언론은 만 21세의 파키스탄 유학생 초드리가 대학 최초로 여성으로서 수석 졸업의 영예인 '윌리엄슨 상'을 수상했다고 보도했다. 인터뷰에서 초드리는 "지도교수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며 교수와 급우들의 우정 덕에 향수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수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며 농담을 주고 받는 건 파키스탄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교수들의 조언으로 동물행동학에서 신경과학으로 전공을 바꿔 피츠버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대 박사후과정을 거쳐 2010년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의 콩코르디아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교수들은 그에게 "책 한 권 분량만큼 두툼한" 추천서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이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씨앗들"이라며 "내 생애 동안 그 빚을 갚을 수 있기를 원한다"고 지난 4월 캐나다 공영방송 CBC 인터뷰에서 말했다.

물론 도움과 격려만 받은 건 아니었다. 그는 "(대학원 시절) 논문 발표장의 어떤 이들은 연구 주제가 아니라 내 영어 발음을 트집잡곤 했다"고 회고했고, "파키스탄인이라는 정체성을 너무 드러내면 교수 자리를 얻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조언한 교수도 있었다"고도 말했다.
그는 신경행동심리학자로서, 약물과 술, 담배 등 중독 증상의 신경학적 메커니즘 연구 분야에서 도드라진 성과를 거두며, 독자적인 연구실을 두고 제자들을 양성했다. "하지만, 나이 든 백인 남성이 대부분인 초청 강사들은 내 연구실에서 내게 '당신은 어느 연구실에 소속돼 있느냐'고 묻곤 했다"고 말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대학원과 박사후과정 시절에는 '파키스탄 무슬림'이란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인종과 출신지를 지속적으로 변명하듯 설명해야 하는 환경은 당사자의 기운을 잃게 한다. 많은 여성이 학계에서 중도 이탈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내 '공정 다양성 포용 위원회(EDI)'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특히 자신의 처지와 겹치는 학생들을 격려하는 데 마음을 쏟았고, 같은 과 교수 바이어스하인라인과 함께 학생들의 '워라밸(work-life balance)'과 경력 관리 등을 조언하는 'PsyHacks' 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했다. 그는 2014년 부교수로 승진했고, 승진하던 해에 2009년 결혼한 남편 모니 오리페(Moni Orife)와 첫 아들(Reza)을 얻었다.

난소암 진단 전후의 시간들

대표적인 여성암 중 하나인 난소암은 증상이 워낙 흐릿하고 경미해서 조기 진단이 어렵고, 예후도 썩 좋지 않아 '조용한 살인범(silent killer)'이라 불린다. 골반 부위 불편감이나 복부 팽만감, 소화불량 등 초기 증상으로 병원에 가더라도 난소암 진단을 받지 못하는 예가 흔하고, 질식(膣式) 초음파 검사나 'CA125' 혈액 종양 항원검사로도 확진이 어렵다고 한다. 병증이 워낙 뚜렷해 개복 조직검사를 시행하는 시점에는 이미 말기인 경우가 많다. 미 국립보건원(NIH) 집계 난소암 2011~17년 5년 생존률은 49.1%였고, 2021년 한해 난소암 2만 1,410건이 신규 진단돼 1만 3,770명이 숨질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 난소암 진료 환자 수는 2019년 현재 총 2만4,134명이고, 5년 생존률은 62.1%. 여성암 사망자의 47%가 난소암으로 사망해 전체 여성암 사망률 1위를 차지했다.
초드리는 2020년 1월, 심한 피로감과 경미한 하복부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다가 '요로감염' 진단과 함께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증상은 점점 악화했고, 의사는 2월 중순 동일한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그는 한동안 의사를 만나지도 못했다. 영국처럼 무상의료 정책을 채택한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먼저 주치의(family doctor, 대부분 일반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고, 의사 처방이 있어야 전문의가 있는 큰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점점 심해지는 피로감과 불편감도 팬데믹 때문이라 여기던 초드리는 2차례 질식초음파 검사 결과를 영국에 살던 부인과 의사인 삼촌에게 보냈고, 삼촌은 당장 혈액 종양표지자검사를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검사 결과 그의 'CA125' 수치는 정상인의 26배에 달했다. 그는 첫 진료를 받은 지 6개월 만인 6월 10일, 개복 조직검사를 통해 난소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약 4주 뒤 화학치료를 시작했다.
다소 개선되는 듯하던 암 수치는 6차례 화학치료를 마친 지난해 말 무렵부터 약물 내성이 커지면서 다시 악화했고, 장폐색 등 합병증도 심해졌다. 입-퇴원을 반복하던 그는 지난 8월 '방법이 없다'는 진단과 함께 통증완화병동으로 옮겨졌다.

암 진단 이후 그는, 밀린 숙제를 둔 꺼내든 개학 직전의 아이처럼 더 분발했다. 자신을 의지하며 따라준 연구실 제자들을 제 몸보다 먼저 걱정했다. 가난한 제자들의 학회(Research Society on Alcoholism) 참가 비용 모금 캠페인도, 장학기금 마련 '셔플'도 그렇게 이뤄졌다. 4월 캠페인 직후 CBC 인터뷰에서 그는 "연구실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잊고 있던 내 능력, 즉 내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발병 전부터 성실한 트위터리언이었던 그는 자신의 투병 과정과 캠페인 소식들을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그의 네트워크는 학내-학계에서 캐나다와 북미로, 유럽으로 급속히 확산됐고, 팔로워도 순식간에 약 9만여 명이 늘어났다. 임종 시점 그의 트위터 팔로워는 14만3,400여 명이었다. 그의 연구실이 배출한 첫 박사로 현재 맥길대에서 박사후과정에 있는 밀런 밸리어(Milan Valyear)는 캠페인 모금을 통해 영원히 이어질 초드리의 자취를 환기하며 "그건 그의 대담함과 용기, 인격적 매력의 작은 예일 것"이라고 말했다. 초드리가 지도한 박사 논문으로 2020년 캐나다 신경과학회의 'Brain Star Award'를 수상한 밸리어는, 박사과정 중 진로를 두고 실의에 빠져 있던 자신에게 "진심으로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내 생각에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믿고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해준 초드리의 조언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시간을 가족-친지와 최대한 많이 보내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사양했다. 대신 트위터에 매달렸다. 지난 국제 난소암의 날(5월 8일), 그는 "오진으로 그리 오래 병을 방치한 사실"과 "(다른 암과 달리) 긴 세월 난소암 진단-치료 기술에 거의 진전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트윗을 썼다. 여성암 진단 치료에 필요한 연구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그는 트위터 팔로워가 10만 명을 돌파하던 9월 중순을 기점으로 "난소암에 대한 경각심을 돋우기 위해" 자신의 증상과 오진- 처방 등 투병의 모든 과정을, 분노와 두려움과 체념과 의지의 감정들을 트위터에 일삼아 공개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여러분의 몸을 알아야 합니다.(...) 피로를 비롯한 작은 변화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내가 암과의 싸움에서 졌다고 말하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고, "단지 처방이 듣지 않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이 목표액보다 훨씬 많이 모인 것, 소수자 학생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에 수많은 이들이 동참해준 것을 "내 생애 최고의 기쁨"이라고도 했다. 대학 측은 9월 9일 복귀 가망이 희박한 그를 정교수로 승진 발령했다. 완화병동의 그는 기쁨과 고마움에 흐느끼며 "정교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나처럼 파키스탄(같은 곳)에서 와서 많은 불리에 직면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무척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성취도 같은 처지의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희망했다. 트위터의 그는 늘 의연하고 담담했다.

하지만 갓 초등학생이 된 만 6세 아들에게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알리는 건 힘겨워했다. 지난 5월, 그는 팔로워들에게 "오늘은 아들에게 내가 암으로 죽을 거라는 사실을 말하기로 한 날"이라고, "내가 그를 위로할 수 있게 먼저 슬픔으로 울부짖어도 이해해달라"고 썼다. 약 넉 달 뒤 그는 "내 아들도 내가 화장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안다"며 남편과 아이가 자신의 유골함을 나무 아래에 묻는 수채화를 그려 자랑하기도 했다. 9월 13일 트위터에 그는 "비록 나는 무척 두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지금 내 생은 환희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이토록 크나큰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가족과 친구들과 수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지금 나는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하다"고, "새로운 삶을 맞이할 잔치를 벌일 생각이니 내 숲 속 식탁에 모두를 모여 달라. 나는 두렵지 않다"고 썼다.

생태(부패)학자들은 유기체의 죽음을 더 큰 생명활동의 한 단계이자 새로운 시작으로 판단한다. 가령 고래가 죽어 물에 가라앉는 이른바 '고래 낙하'는 거대한 해역의 크고 작은 바다생물뿐 아니라 해저 박테리아 생태계에까지 장기간 풍요의 잔치를 베푼다고 한다.('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지음, 바다출판사) 초드리의 삶이 그러했다. 촉망 받던 한 젊은 교수의 죽음에 콩코르디아 대학은 이례적으로 조기를 게양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