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단톡방' 이후...우리는 불법촬영 범죄에서 안전한가

입력
2021.11.13 18:00
징역 2년 6개월형 최종훈 8일 만기 출소
이른바 '단톡방' 사건 2년 지났지만
'시청·소지도 범죄'란 인식 여전히 미미
변형카메라 이용한 제작 범죄 만연하고
'디지털 성범죄 대표국가' 오명도 씌워져

가수 최종훈씨가 8일 만기 출소했습니다. 그는 가수 정준영씨와 함께 2015, 2016년 2년 동안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된 성관계 동영상이나 사진 등을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씨 등이 참여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에 총 11차례 공유하고, 술에 취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징역 2년 6개월형을 확정받았습니다.

사건이 불거졌던 2019년 당시 많은 이들이 '불법촬영도 모자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해 품평까지 하는' 단톡방 참여자들의 행태에 분노했는데요.

그렇다면 그때 우리의 분노는 2년이 지난 현재 제도와 문화의 변화로 다다랐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아니오'입니다. ①불법촬영물을 시청·소지하는 행위는 여전히 '호기심에 잠깐 그럴 수도 있는' 행위로 여겨집니다. ②변형카메라가 끊임없이 나오고 불법촬영 범죄는 여전히 많죠. ③국제 인권단체가 한국을 '대표적인 디지털 성범죄 국가'로 꼽을 정도입니다.

'단톡방' 사건 이후 한국일보가 보도한 기사들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의 대표 유형인 '불법촬영 범죄의 현재'를 짚어 봤습니다.



대법원 '성착취물 시청·소지'도 중형선고했지만

'n번방'·'박사방' 이후 음란물을 '불법촬영물' 내지 '성착취 영상'으로 새로 부르는 등 그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n번방과 박사방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텔레그램으로 유포·판매한 사건입니다. "단체 채팅방에서 성착취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던 '남성의 집단 놀이문화'가 기형적으로 발전한 것"(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0701510003968)이라는 지적이 나왔죠.

성착취물 제작뿐만 아니라 그것을 '시청하고 소지하는 것도 범죄'라는 인식도 생겼습니다. 대법원은 지난달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 대해 징역 42년형을 확정하면서 유료회원 두 명에게도 각각 징역 7년과 8년을 확정(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01412100001708)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보편의 인식'으로 나아가진 못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8월 발표한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 방안 연구'(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81115460001744)에 따르면, 남성의 절반(55%)만이 '불법촬영물 시청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답했죠. 여성은 83%가 처벌에 찬성했다고 합니다.

n번방·박사방 가담자들을 검거했던 경찰의 디지털성범죄특별수사본부(특수본) 운영 당시 1만 명대 초반까지 줄어들었던 '다크웹' 국내 접속자는 특수본 종료 후인 올해 1월 1만4,000명으로 늘더니 올해 9월 다시 1만9,000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다크웹은 접속을 위해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인터넷망(웹)으로 주소(IP) 추적이 어려워 범죄에 활용됩니다.



변형카메라에 활개치는 불법촬영 범죄

성착취물 제작 범죄가 활개를 치는 것도 여전합니다. 경찰청이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수사에 나선 건수는 2018년 5,925건, 2019년 5,762건, 지난해 5,032건으로 줄어들고는 있으나 여전히 5,000건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뒤엔 규제 없이 생산되는 변형카메라(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80317130000716)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8월 불법촬영(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송치된 A교사는 학교 화재감지기에 초소형 카메라를 숨겼다고 합니다. 그는 2018년부터 올해 4월까지 성착취물 669건을 제작했고 피해자는 116명에 이릅니다.

5㎜에 불과한 초소형 카메라는 화재감지기 외 안경, 액자, 보조배터리, 비누에 장착이 가능하고 온라인으로 개당 10만~20만 원에 쉽게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규제 입법이 추진되고는 있으나 '웨어러블(몸에 착용할 수 있는) 카메라 등의 기술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고 하죠.



"기술 발전에 한참 뒤처진 성평등 인식" 국제사회의 뼈아픈 평가

온라인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도 여전합니다. 특히 최근엔 헌팅(모르는 사람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만남을 요청하는 행위)한 여성의 신상을 공유하고 외모를 품평하는 커뮤니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0313560003590)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여기엔 여성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뿐만 아니라 당사자 몰래 찍은 사진도 게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적인 잣대로 봐도 한국의 불법촬영 범죄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사례만을 모아 보고서('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를 낼 정도입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1614030004578)

보고서를 쓴 헤더 바 HRW 여성권리부문 디렉터는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기술은 발전했으나 성평등 인식은 한참 뒤처졌다"는 뼈아픈 분석을 내놨습니다.

그는 ①디지털 성범죄의 만연뿐만 아니라 ②"벌금 500만 원도 안 나오는데 기소할 거냐"는 식의 수사·사법당국의 2차 가해, ③가벼운 처벌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트위터코리아에서 유해 콘텐츠 근절을 맡고 있는 윤채은 공공정책 총괄 상무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82609080002017)에서 "한국에서 퍼져 나간 불법 촬영물은 '몰카(molka)'라 불리며 인터넷 전염병 취급을 받는다"며 "국제적 망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불법촬영 범죄가 진짜 심각한 이유: 인격살해

불법촬영 범죄는 곧 인격살해입니다. 저장·변형·유포가 쉬운 온라인 콘텐츠의 특성상 피해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조주빈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던 올해 3월에도 "(박사방) 성착취물과 피해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으며, 피해자들이 단체나 언론에 제보하는 기가 막힌 상황"(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31712150002720)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인격살해를 막기 위해 피해 사진과 영상을 삭제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가 운영중이지만 인력과 예산 문제로 골머리(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70511050004247)를 앓고 있습니다. 올해 7월 기준 직원 1명이 피해자 160명을 담당하고 있다는데요. 매일 피해자 1명의 영상을 지우면서 나머지 159명의 영상을 다시 찾아보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에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수사기관도 수사 초기 단계에 피해 영상물 확산 차단 조처를 할 수 있도록 성폭력처벌법 등의 개정을 권고했습니다. 현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를 통해 성착취물 삭제 요구 및 접속 차단 초지를 내릴 수 있어 신속한 대처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문위원회는 보도자료에서 "방심위가 심사를 해온 것은 그동안 성범죄 피해물을 음란물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라며 "성범죄 피해물을 음란물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응급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불법촬영 범죄 근절을 위해 필요한 것들

불법촬영 범죄자의 평균연령은 34.7세로 불법촬영을 제외한 성범죄자의 평균 나이(41.2세)보다 6세 이상 어리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72714410000045)고 합니다. 재범까지 걸린 기간도 430.3일로 다른 성범죄(588.7일)보다 5개월 이상(158.4일) 짧고요.

이는 불법촬영이 '심리적 장벽이 낮은' 범죄라는 점을 증명합니다. 동시에 피해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획일적인 사회봉사와 수강명령 처분 대신 범행 특성을 감안한 교정 대책이 나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 HRW도 지적했듯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사법당국의 처분이 적절한지도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도 없었는데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정준영씨에게 징역 1년을 감형한 항소심의 판단(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5121503092439)을 되짚어 보는 것처럼요.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항소심의 형량을 유지, 정씨에 대해 징역 5년형을 확정했습니다.

익명으로 성범죄 재판 방청활동 등을 하는 '연대자D'는 지난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0612320001077)에서 "(방청연대 활동으로) 재판부와 공판검사가 긴장하고 언행을 주의하는 게 바로 체감됐을 정도"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올해 단톡방 피해자가 호소한 2차 가해 문제도 우리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입니다. 그는 5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2차 가해 실태를 알렸습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50708450000116) 그러면서 ①사실 확인 없이 보도해 2차 가해를 선동한 언론 징계 ②포털 성범죄 뉴스 댓글 비활성화 ③2차 가해 처벌법 제정 ④민사소송 시 피해자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을 주장했습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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