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조직 중 후보직속기구는 후보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직속으로 ‘실용외교위원회’를 뒀다. 상대적으로 ‘명분’이 중요하다는 외교 분야에서도 평소 지론대로 실용에 방향성을 맞춘 것이다.
이재명표 실용외교의 밑그림은 어떻게 그려질까. 위원장을 맡은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사는 9일 “북한과의 비핵화ㆍ평화 협상 과정에서 ‘인센티브(이익)’와 ‘디스인센티브(불이익)’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스킬(기술)이 중요하다”고 했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에 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한반도평화포럼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신(新)국제질서와 대한민국 외교의 방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1일 위원장을 맡기 전 잡힌 일정”이라며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했지만, 자리의 무게감을 감안하면 이재명표 실용외교의 단면을 가늠할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됐다.
위 위원장은 ‘현실주의적 관점’을 토대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상 방법론으로는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를 병행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경우에 따라선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건설적ㆍ생산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그는 다만 “인센티브ㆍ디스인센티브 배합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면서 “배합률은 정세에 따라 매 순간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대북정책이 문재인 정부보다 한층 유연해질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비핵화ㆍ평화 협상은 여러 단계에 걸쳐 타결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내놨다. 위 위원장은 “핵이 생존 수단인 북한에 ‘일괄타결’을 적용하기는 힘들다”며 “단계적 접근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너무 많은 개별 협상은 합의를 방해할 것으로 봤다. 그는 “슬라이스(조각)를 잘게 하면 북한식 ‘살라미 전략’에 이용될 수 있으니 살라미를 가급적 크게 잘라야 한다”고 비유했다. 협상 유연성을 발휘해 이른바 빅딜(Big deal)과 스몰딜(Small deal) 사이에서 접점(미들딜)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 위원장은 간담회 내내 ‘현실’ ‘실용’ 단어를 자주 썼다.
이 후보 측은 ‘북미통’이자 북핵전문가인 위 위원장을 영입하기 위해 10개월 넘게 공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 위원장이 그간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대표 인사라 그가 실용외교위원장에 낙점됐을 때 외교가에선 “의외의 인사”라는 평이 적지 않았다.
위 위원장은 “(이 후보 측과) 오래전부터 연락해왔다. (이 후보가) 실용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이 후보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란 문재인 정부 대북ㆍ외교정책의 큰 틀은 잇되, 접근 방법에선 차별화를 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이 후보가 외교 분야 경험이 적다는 우려를 잘 알고 있어 인선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