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기 전까진 저도 ‘장애는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장애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어요. 그걸 알리고 싶습니다.”
'휠체어 강사' 박영하(39)씨의 얘기다. 박씨는 2000년 오토바이 사고로 몸의 상당 부분이 마비됐다. 몸은 불편해졌지만 "사회로 나가고 싶다"는 열망은 강해졌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국립재활원의 장애발생예방교육 강사. 벌써 11년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부산과 울산, 대구, 경북까지 아우르는 지역 대표강사가 됐다. 박씨는 “강의 후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애인 재활 전문병원인 국립재활원은 9일 국제 비영리 민간단체 세이프키즈코리아와 손잡고 학교 현장은 물론, 온라인을 통해서도 '후천적 장애발생 예방교육 안전캠페인'을 벌인다고 밝혔다. 박씨 같은 강사 40여 명이 함께 참여한다.
장애인 하면 흔히 선천적 장애만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 가운데 88.1%가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었다. 원인은 질병(56%)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사고(32.1%)다. 캠페인을 벌이는이유는 이 가운데 교통사고나 낙상 등으로 발생하는 뇌나 척수 손상은 교육을 통해 예방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씨처럼 실제 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얻은 강사들이 직접 학교와 공공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예방 교육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은 어렵지 않다. 횡단보도에서 초록 불이 켜졌어도 좌우를 살핀 뒤 건너야 한다, 자전거나 킥보드를 탈 때 꼭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한다, 계단이나 난간에서 위험한 놀이를 하면 안 된다는 등 기본적인 규칙들을 짚어준다. 박씨는 “처음에는 관심 없어 하던 아이들도 실제 장애를 얻은 강사가 직접 경험담을 들려주면 반응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강의를 들은 한 학생은 "장애인이 우리와 다르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내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소감을 써내기도 했다.
장애발생 예방교육은 2005년 시작됐다. 첫 해 10차례 열린 교육은 계속 확대돼 2019년에는 4,089회까지 열렸다. 수요가 많다 보니 규모가 급팽창했지만, 코로나19 유행이 번지면서 지난해부터 교육 횟수가 뚝 떨어졌다. 아무래도 오프라인 교육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재활원은 장애 예방 규칙들이 담긴 안전서약서를 캠페인을 통해 널리 알리기로 했다. 재활원 관계자는 “미래 세대가 규칙을 스스로 지키게 함으로써 아동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교육의 효과는 은은하게 번지고 있다. 실제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 때 88.9%였던 후천적 장애 발생률은 3년 뒤 88.1%로 소폭 감소했다. 서울 지역 대표강사 최국화(40)씨는 “알고 있지만 평소 지키지 못했던 것들 때문에 사고가 나고 장애를 얻는다”며 “아이들에게 좀 더 조심할 것을 당부해 다치지 않고 자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씨도 중국 유학 중이던 20대 때 계단에서 떨어져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최씨는 “강사 일이 내 스스로 장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번 캠페인은 △사고 예방 요령이 담긴 안전서약서에 서명하거나 △장애발생예방교육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홍보 포스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고 인증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방식이다. 오는 30일까지 이어지며, 참가자 중 선착순 600명에게는 편의점 모바일 상품권이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