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김종인 딜레마'... "권한 주는데, 대체 어디까지?"

입력
2021.11.0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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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두고 '김종인 딜레마'에 빠졌다. '킹 메이커'라는 상징성과 노련한 지략, 중도 확장성을 고려하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후보가 반드시 잡아야 하는 카드다. 하지만 강한 장악력을 원하는 김 전 위원장의 스타일상 '상왕이 오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윤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의 손을 잡고 싶어한다. 5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김 전 위원장이 도와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 자주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윤 후보는 정치 신인으로서 실수를 연발한 데다 최근 '강성 보수'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는데, 그런 약점을 김 전 위원장이 메워줄 수 있다. 김 전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저작권을 갖고 있고, 비대위원장 시절 '서진(西進) 정책'을 통해 국민의힘의 중도·호남 확장 행보를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김 전 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만으로 '미숙한 후보론'을 상당 부분 잠재울 수 있다.

관건은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의 요구를 얼마나 들어주느냐다. 김 전 위원장은 8일 채널A 유튜브에 출연해 "선대위가 어떤 모습인지 그림을 제시해야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을지) 판단할 수 있다. (윤 후보가) 선대위 구성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내가 원하는 대로 선대위를 구성해달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김 전 위원장은 대선 승리를 위해 여러 선결 조건들을 제시한다"며 그 조건으로 '선대위 전면 재구성'을 언급했다.

윤 후보 주변에선 김 전 위원장의 강한 장악력이 독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김 전 위원장은 문 대통령, 박 전 대통령 및 측근들과 사실상 권력 다툼을 하다 멀어졌다. 그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입은 건 문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었다.

국민의힘 인사들과 김 전 위원장의 껄끄러운 관계도 고민거리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후보가 권력형 비리와 싸우겠다면서 감옥에 다녀온 사람을 선대위원장으로 앉히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원로가 여럿 있다"며 김 전 위원장의 비리 전력을 꼬집었다. 윤 후보는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도 타진 중이지만, 그 역시 김 전 위원장과 불화한 적이 있다.

윤 후보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선대위 출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윤 후보측의 권성동 비서실장은 일단 진화에 나섰다. 9일 페이스북에서 "김 전 위원장은 선대위 구성과 관련해 전권을 달라고 한 적이 없다"며 "지금도 잘 소통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 잘 협의해 최고의 선대위를 발족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손영하 기자
박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