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비교우위론'에 근거한 자유무역이 중·후진국 저임금 노동집약 상품과 선진국의 고임금 상품 간 무역관계(부등가 교환)를 고착시켜 국가 간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하고, 중·후진국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은 20세기 중반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 '문제'가 무역 선진국들에는 성장과 풍요의 토대라는 점이다.
세계는 관세동맹을 넘어 국가·지역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거대 단일시장이 됐고, 자유무역의 병폐도 더불어 심화해왔다. 개별 국가경제의 무역을 통한 양적 성장은 이 문제점을 덮는 데 기여했고, 주변부의 부패 정치는 사회의 계층·계급화와 개인 간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 방관하며 제 권력을 강화했다. 21세기 모든 국가와 개인은, 의지와 무관하게, 거대한 불의의 구조 위에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지니고 누리는 주체는, 국가든 개인이든, 저 근원적 윤리의 추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구 선진국 일부 종교·시민단체가 자유무역의 대안으로, 다시 말해 이런 추궁에 대한 대답으로 내놓은 게 이른바 공정무역이다. 후진국 수공예품을 가져다 선진국 시장에서 팔아 이윤을 되돌려주는 방식. 그들의 구호는 '원조 대신 무역'이었다.
그 방식을 '무역'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건 1988년 11월 15일 설립된 첫 공정무역 브랜드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였다. 멕시코 남부에서 선교봉사하던 한 네덜란드 신부(Frans van der Hoff)가 농부들이 생산한 커피를 네덜란드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함으로써 '제값'을 받게 한 시도. 소비자들의 호응으로 품목은 초콜릿과 설탕, 차, 수공예품 등으로 확대됐고, 이듬해 세계공정무역연합(IFTA)과 1997년 국제인증기구(FLOI)가 설립되며 대안적 생산·소비자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공정무역이 부등가교환의 작은 개선일 순 있지만, 산업구조 고착화와 불균등 발전이란 자유무역의 근본적 문제를 해소하진 못하며, 오히려 그 문제를 은폐하는 수단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것도 알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