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 보행 로봇을 걷어차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됐을까

입력
2021.11.06 14:00
이재명의 로봇 영상이 부른 '로봇 윤리' 논란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 걷어차는 영상도
"로봇 학대" "아픔 안 느끼면 괜찮다" 의견 엇갈려
"로봇의 도덕적 지위, 동물권과 비슷할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로봇 행사장에서 사족보행 로봇의 견고성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로봇을 "집어던지는" 행동이 로봇에 대한 윤리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후보를 공격하는 측은 이것이 이 후보의 '인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하고 있고, 방어하는 측은 로봇을 인간과 동일하게 취급하려는 주장이 과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은 제쳐두고라도, "로봇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실제 많은 학자들이 고민해 온 윤리적 질문이다. 이들은 로봇이 인류의 생활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인간형을 띤 이족보행 로봇이나 동물처럼 움직이는 사족보행 로봇을 어떻게 대우할 것이며 그 근거는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 온라인에서 이재명 후보의 '로봇 사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①로봇을 인간 혹은 생물체로 대우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②실제 인간이나 동물조차 윤리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데 로봇 윤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③로봇은 타인의 자산이므로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④로봇에 대한 공격성은 동물이나 나아가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확산할 여지가 있다.

이런 입장 차는 로봇의 '도덕적 지위'를 다르게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①과 ③은 로봇 자체의 도덕적 지위를 부정한다. ③은 로봇을 보호하자는 것은 같지만 사실 로봇이 아니라 '로봇 주인'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요구한다. ②와 ④는 로봇을 도덕적으로 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로봇을 괴롭히는 행위'의 도덕적 중요성을 다르게 본다.



미국서도 '보스턴다이내믹스' 논쟁...로봇, 고통 느끼지 않으니 괜찮다?



미국에서도 이미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달 31일 이재명 후보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미국의 로봇개발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례를 꺼냈는데, 이것이 2015년 2월에 발생한 "사족보행 로봇을 걷어차도 되는가" 논쟁이다. 로봇이 외부 충격에도 쉽게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로봇을 걷어차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로봇이 다리 관절을 움직이며 똑바로 서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로봇 학대' 논란을 부른 것이다.

하지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영상을 비판하는 이들도 로봇이 인간이나 동물처럼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동물보호협회(PETA)는 "개 로봇에 대한 폭력이 개에 대한 폭력보다는 낫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폭력조차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논평했다. 로봇에 대한 폭력을 비판했지만 최소한 동물보다는 그 지위를 낮게 본 것이다.




노엘 샤키 셰필드대 로봇공학 명예교수는 "(로봇에 대한 공격은) 로봇이 고통을 느낀다면 비도덕적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다"면서 "로봇 제작자들이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생물 비슷한 형태로 로봇을 만드는데 이 때문에 실제로 살아 있지 않은 대상을 '인간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로봇과 인공지능(AI)의 윤리를 연구해 온 마르크 쾨켈베르크 오스트리아 빈 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로봇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만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칫 로봇에 대한 폭력이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로봇 향한 도덕적 공감은 상대적..."감정표현 있으면 괴롭힘 못해"



쾨켈베르크 교수조차 전통 윤리관으로는 '로봇에 대한 동정심'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윤리 자체가 애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염두에 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관계적 윤리' 개념을 적용해 로봇의 형태, 태도, 상황에 따라서 로봇이 실제로 인간과 관계를 만들면서 인간의 도덕적 감정이 형성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외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여전히 로봇을 걷어차거나 괴롭히는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대신 이 기업은 2018년 개 형태의 사족보행 로봇이 인간의 괴롭힘에 마치 살아 있는 개처럼 적극 저항하는 행동을 보이는 영상을 공개했다. 윤리적 논란에 대응하기보다 로봇을 더욱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 괴롭힘에 저항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한 것이다.


예일대 로봇공학 연구팀은 2020년 감정표현 기능이 있는 로봇 '코즈모'를 활용해 실험한 결과, 한 참가자가 로봇을 괴롭힐 때 로봇이 반발하거나 슬퍼하면 다른 참가자는 이를 제지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로 그 로봇이 주어진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른 참가자도 오히려 괴롭힘에 동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처럼 로봇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감정은 모순되더라도 상황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로봇윤리 전문가인 케이트 달링 박사는 "로봇에 권리를 주는 얘기는 아직 먼 얘기지만 부여된다면 동물권처럼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며 "동물권에 관해서 우리가 문화적·감정적 이유로 반려견을 먹지 않지만 돼지고기는 먹는 것처럼, 로봇에 대해서도 어떤 것에는 권리를 주고 어떤 것에는 주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