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직접 투자하고 제작한 영화 'F20'이 조현병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한다는 비판 속에 지상파 방영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이 영화를 관람한 후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은 백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정작 본인이 불안에 시달리다 환청을 듣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시나리오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반면 조현병 환자였지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시(John Nash) 교수의 일생을 다룬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는 영화적인 재미를 위한 과장된 표현은 있었으나 본인과 가족이 느끼는 현실적인 아픔과 의학적 전문성이 적절하게 가미된 수작이었다. 환자들이 경험하는 정신병적 증상에 대하여 내 자신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본 계기도 되었다. 만약 'F20'의 제작 의도가 낙인효과(stigma effect)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자극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보다 실제 환자와 가족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모든 형태의 보건 및 인구동태 기록에 기재되어 있는 질병 및 기타 보건문제를 분류한 것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수정한 것이다. 영화 제목인 'F20'은 이 분류에 따른 조현병의 질병 코드를 의미한다. A부터 Z까지 부여된 코드 중에 정신질환에 배당된 알파벳(alphabet)은 하필이면 'F'이다.
가장 좋은 학점인 A가 있다면 F는 낙제를 의미한다. 영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욕은 F로 시작된다. 오래전부터 '4'라는 숫자의 발음이 죽을 사(死)와 같다며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4'라는 숫자를 대신한 것이 공교롭게도 'four'의 약자인 'F'다. 물론 'F'와 관련된 부정적인 인식이 알파벳의 잘못은 아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표현되어진 기호가 시니피앙(signifiant, 기표)이라면, 시니피에(signifié, 기의)는 그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을 가리킨다고 했다. 'F' 코드는 '정신 및 행동과 관련된 질환'을 편의적으로 분류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 정신질환을 가진 모든 사람이 '정신이 이상하거나 행동에 문제가 있다'라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면 안 된다. 더군다나 정신질환의 진단은 생물학적인 검사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의가 직접적인 면담을 통해 단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기에 간혹 시간의 경과에 따른 증상의 변화에 따라 진단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욤(Jorm)은 '정신질환을 인식하고, 관리하며, 예방하는 것에 대한 지식과 신념'을 '정신건강이해력(mental health literacy)'으로 정의했다. 영화 한 편으로 정신질환을 다 알기도 어렵지만 조현병 환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무조건 감추기만 하는 것도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인해 'F' 코드가 주홍글씨가 된다면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여전히 병원에 가기를 꺼려 할 것이다. 'F' 코드의 낙인효과는 정신적 상처를 입고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