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금리 인상이 경제성장률을 갉아먹을 뿐 물가 상승과 부채 증가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난달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긴축에 속도를 내려는 한국은행 행보에 묵직한 견제구를 던진 셈이다.
KDI는 4일 발표한 민간부채 국면별 금리 인상의 거시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통해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을 저해할 수 있음을 살펴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DI는 금융위기나 최근 코로나 위기 등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민간 부채가 더 빠르게 확대되는 ‘고(高)부채 국면’과 그렇지 않은 ‘저(低)부채 국면’을 나눠 과거 22년간(1999년 2분기~2021년 1분기) 금리 인상의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기준금리가 25bp(0.25%포인트) 인상되는 경우 고부채 국면에서는 3분기에 걸쳐 경제성장률을 0.15%포인트, 저부채 국면에서는 0.08%포인트 낮추는 부정적 효과가 있었다. 반면 물가와 부채 증가율은 통계적 유의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게 KDI의 설명이다.
우선 물가 상승률은 저부채 국면, 고부채 국면 모두 기준선인 0% 부근을 유지했다. 부채 증가율도 저부채 국면에서는 중간값이 기준선(0%) 부근을 유지했으며, 고부채 국면에서도 0.1%포인트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천소라 KDI 모형 총괄은 “2000년대 이후 물가와 경기 간의 관계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금리 인상이 부채 증가율에 미치는 영향도 상황에 따라 편차가 커, 통계적 유의성을 찾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해석은 가계 부채 증가와 높은 물가 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려는 한국은행의 시각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은 지난달 금통위 회의에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며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KDI는 보고서를 통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대신 금융정책 등 다른 수단을 통해 민간부채 증가세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천 총괄은 “금리 인상이 금융시장 불안을 일부 완화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와 동시에 경기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위기에서 경제 주체별 불균등한 충격이 발생했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취약계층의 채무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KDI는 국책연구기관이 한국은행의 행보에 딴지를 걸었다는 해석을 의식한 듯, 한은의 금리 인상 방향성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밝혔다.
천 총괄은 “(저금리로 인한) 금융 불안 문제점을 공감하고, 금리 인상 방향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경기회복세를 감안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