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 풍광’ 제주도 명물 야자수, 이젠 천덕꾸러기 전락

입력
2021.11.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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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 등에 쓰러지며 안전사고 발생 빈번
수령 40년 넘고 15m까지 자라 정전사고
도심 가로수 없애고 해변으로 이식 추진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하기 위해 제주도 도심 곳곳에 심었던 야자수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강풍 등에 쉽게 꺾여 안전을 위협하고, 야자수 잎이 고압전선과 엉켜 정전사고의 원인이 되는 등 애물단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제주시는 올해와 내년까지 사업비 30억 원을 투입해 제주시 도심권에 자리 잡은 워싱턴야자수들을 옮겨 심을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올해 188그루, 내년에는 361그루를 이식할 계획이다.

제주도는 1980년대 초반부터 관광도시 이미지를 조성하기 위해 도 전역에 수천 그루의 워싱턴야자수를 심었다. 야자수들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수십 년간 제주의 명물로 도민과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수령이 40여 년이나 되고, 15m 넘게 자라 안전문제가 제기되면서 결국은 퇴출될 운명에 놓였다.

야자수들은 태풍과 같은 강한 바람이 불면 쉽게 꺾이며 인도를 덮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보행자와 차량에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바람에 꺾인 야자수만 27그루에 달했다. 쓰러지지 않았지만 꺾일 위험이 있어 급히 조치가 이뤄진 야자수도 60여 그루에 이른다.


15m 넘게 자라는 야자수 잎은 고압전선과 엉켜 정전사고 원인으로도 지목됐다. 이 때문에 제주시는 한국전력공사와 협약을 맺고 전력선을 위협하는 도로변 워싱턴 야자수를 제거하고 다른 나무를 심기도 했다. 미세먼지를 저감하는 가로수 본연의 기능을 감안해도, 야자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시 관계자는 “도심 내 야자수를 협재해수욕장의 공유지로 옮겨 심기로 하고, 지난해 제주도 도시림 등의 조성관리 심의위원회 허가를 얻었다”며 “야자수가 뽑힌 자리에는 제주지역 향토수종인 후박나무나 먼나무 등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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