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신구 권력, '이재명표 재난지원금' 놓고 파워 게임

입력
2021.11.04 04:30
1면
김부겸 "재정 여력 없다" 난색 
이재명 "문제 될 것 없다" 직진

문재인 정부의 신구(新舊) 권력이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지급 여부를 둘러싸고 파열음을 냈다. '지급하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어렵다'는 정부가 3일 공개적으로 이견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40% 안팎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권력 그립을 여전히 단단히 쥐고 있다. 이번 재난지원금 충돌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느냐에 따라 여권 권력지형도가 재편될 수도 있다.

이재명 靑 냉기류에도 "민주당, 적극 추진해 달라"

이재명 후보는 이날 국회에서 중앙선거대책위 회의를 처음으로 주재하면서 "전 국민의 삶을 보살피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재난지원금 추가 지원 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내린 사실상의 지침이었다. 이 후보는 지난달 31일 사전 협의 없이 "재난지원금을 국민 1인당 최하 30만~50만 원 정도는 더 지급해야 한다”고 던졌고, 이에 민주당엔 떨떠름한 기류가 있었다. 이 후보의 구상을 실행하려면 정부가 약 15조~26조 원의 예산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는 지난 9월 ‘소득 하위 88%’에 1인당 25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약 두 달 만에 이 후보가 불쑥 꺼낸 제안을 청와대가 반기지 않는다는 신호가 곧장 당정에 전파됐지만, 이 후보는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양새를 피하지 않았다. 대장동 의혹에 쏠린 관심을 돌리고 박스권인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 후보가 의도적으로 판을 키운다는 시각도 있다.

이 후보는 선대위에서 “대한민국은 가계부채 비율이 높고 국가부채 비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비정상적인 상태”라며 “(재정당국이 걱정하는) 국가부채 비율은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초과 세수 일부를 국가채무 상환에 활용해 재정건전성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인식 차를 드러낸 것이다.


김부겸 "재정 여력 없다"... 靑 의중 따라 '총대'


청와대가 등판하면 정면충돌로 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김부겸 국무총리가 나섰다. 김 총리는 3일 CBS라디오에 나와 '이재명표 추가 재난지원금 구상'에 대해 “당장 재정 여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총리는 “내년 정부 예산이 국회 심사에 들어가니 국회에서 논의를 해주면 모른다”고 원론적으로 여지를 두면서도 “지금 정부로선 소상공인·자영업자 중 손실보상법으로 도와드릴 수 없는 250만~300만 명을 어떻게 돕느냐가 제일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고수하는 '선별 지원' 방침에 힘을 실은 것이다.

김 총리는 이 후보가 기재부를 압박하는 것을 감안한 듯 “재정당국이 국민들께 미움을 받고 있는데, 막 여기저기서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막 뒤지면 돈이 나오는 상황이 아니지 않냐”고 두둔하기도 했다. 김 총리의 발언은 청와대와의 교감에 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靑·이재명 사이에서... 민주당 접점 찾을 듯



민주당 내 교통정리도 말끔하게 되지 않았다.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 박완주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는 예산국회에서 이 후보의 주문을 수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 추가 세수로 충당하든, 추가경정예산을 또 편성하든, 내년 정부 예산에 반영하든, 일단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전 대표를 지지했던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중론이 상당하다. 공동선대위원장인 홍영표 의원은 3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오히려 여유가 있는 분들도 있다. 어려운 분들, 특히 자영업자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다해야 한다”며 전 국민 지급에 사실상 반대했다.

민주당은 4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의제에 올린다. 당 지도부는 파열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청와대·정부와 이 후보 사이에서 접접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송영길 대표는 "지금이 '이재명 정부'는 아니지 않나"라며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상의하고 후보 뜻을 존중하면서 지혜를 모아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1인당 지급액을 이 후보 제안(30만~50만 원)보다 줄이거나 △초고소득자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절충안이 도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후보는 3일 “당내 의견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합리적 토론과 소통을 통해 다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며 전 국민 30만~50만 원 안에서 물러설 여지를 남겼다.

이성택 기자
신은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