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고발 사주 실체 없다"는 김웅 상대로 고발장 전달 경위 집중 추궁

입력
2021.11.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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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손준성 이어 3일 김웅 첫 소환조사
조성은 통화 녹취 등 대검 관여 정황도 
김웅 "제보 경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직 시절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 조사에 이어 또 다른 '키맨'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3일 불러 조사했다. 두 사람은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공수처는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제시하며 고발장 전달 경위 등을 추궁했다.

김웅 의원은 이날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공수처에 출석했다. 공수처가 9월 10일과 13일 김 의원 자택과 국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지 2개월 만이다. 김 의원은 압수수색 당시엔 참고인 신분이었지만, 이후 검찰에 고소장이 접수되고 사건이 공수처로 넘어오면서 피의자로 전환됐다. 공수처는 전날엔 손 검사를 상대로 입건 54일 만에 첫 피의자 조사를 진행했다.

손 검사 구속영장에는 김 의원이 직권남용과 선거법 위반 혐의 공범으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총선 직전인 4월 3일과 8일 전후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검사 등과 공모해 대검 관계자들에게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하도록 하고, 고발장과 증거자료들을 손 검사로부터 넘겨받아 조성은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손 검사가 텔레그램을 통해 전송한 고발장 등이 김 의원에게 흘러가고, 김 의원이 이를 조씨에게 전달한 뒤 이 중 일부가 지난해 8월 미래통합당의 실제 고발로 이어졌다는 게 공수처가 보고 있는 사건의 얼개다. 공수처는 정확한 전달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이날 김 의원을 상대로 조씨를 알게 된 시점과 경위, 고발장 작성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공수처는 9월 초 뉴스버스와의 통화 당시 김 의원이 했던 발언, 첫 보도 이후 김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해명했던 내용들에도 주목했다. 김 의원은 뉴스버스와 첫 통화에서 "그거(고발장) 제가 만들었다"고 했다가, 다음 날 통화 때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상대 고발장 외) 나머지는 예를 들어 검찰 쪽이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되니까, 그거를 검찰 안에서 해결하기 어렵다고 해서 보내줬을 수는 있다"며 모호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김 의원이 4월 3일 고발장 전달 전후로 조성은씨와 나눈 통화 녹취에 등장하는 발언의 의미도 캐물었다. 김 의원 발언 중엔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서 보내 드릴게요" "고발장을 남부지검에 내랍니다" "제가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 "만약 (고발장 제출하러) 가신다고 그러면 그쪽(검찰)에다가 이야기를 해놓을게요" 등 검찰이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 다수 등장한다.

김 의원은 그러나 이날 조사에서 대부분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공수처 조사 후 취재진에게 "결정적인 이야기는 없었다"며 "(고발 사주 의혹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와 통화) 녹취록을 다 보고 나서 '악마의 편집이 있었구나' 느낌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녹취록 내용 중 일부만 전체 문맥과 다르게 언론에 보도됐다는 것이다.

그는 "대검과 사전 협의가 됐으면 '대검에 이야기를 하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의혹을 반박하면서도 '저희' 표현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은 못한다. 그런데 (제보를 하신) 분에게 제가 받아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취지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손준성 검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태에서, 공수처가 김 의원을 상대로 유의미한 진술을 끌어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손 검사도 전날 조사에서 고발장 전달 경위 등에 대해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그러나 김 의원이 전달한 자료에 담긴 판결문과 유튜브 채널 등을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도 열람했던 사실을 확인한 만큼, 김 의원이 대검과 교감하며 연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는 핵심 피의자인 손 검사와 김 의원 조사 내용을 검토한 뒤,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정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