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어준씨가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해서 논란이 벌어졌다. 물론 개인 방송에서의 언급을 두고 지나친 비판이라는 반응도 일부 있었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대부분의 목소리는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시사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누구든 자유로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특정 정치인을 지지할 수 있지만, 언론인은 예외"라는 모 캠프 관련 인사의 일갈이었다.
혹시나 해서 헌법을 살펴보니, 정치적 중립 의무에 관한 규정은 각각 군대, 공무원, 교육과 관련해서 총 세 번 등장할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시각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마련이며, 언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당장 거리에서 평범한 시민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어떤 신문이 진보 성향이며, 어떤 매체가 보수 성향인지 대부분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연히 클릭한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해당 보도가 어느 매체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지극히 정파적인 매체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또한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언론에 정치적 중립을 당연한 듯 요구하고, 나아가 실제로 그러하다고 믿어버린다. 어쩌면 김어준씨가 숱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온 이유는 그동안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합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언론의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정과 중립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개념이다. 정확한 사실과 근거에 기반하여 한쪽 입장을 비판하고 다른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중립적이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공정하다. 반면에 옳고 그름에는 눈감고 양쪽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는 것은 중립적이라도 공정하지 못하다. 중립을 지키기는 어렵지 않지만, 공정하기 위해서는 훨씬 큰 노력과 책임이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언론 스스로가 균형이라는 허상 뒤에서 손쉬운 길을 택해 왔던 것은 아닌가 반성할 일이다. 하물며 기계적 균형의 외형이 보도의 내용과 톤, 맥락에 숨어 있는 정파적 의도를 가려주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이다.
외국의 경우 주요 언론사가 선거를 앞두고 사설 등을 통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각 후보의 경력과 공약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평가가 이루어지며, 이는 역으로 언론사 스스로의 입장과 성향을 객관화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최근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오고가는 발언들을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개그 프로그램이 발전하기 어려운 이유가 너무나도 이해되지만, 주류 언론에서는 단순한 중계를 넘어 평가와 비판을 내놓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평가와 비판을 포기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것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때문일까? 이러니 언론이 '레거시' 미디어로 치부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