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로 밝혀진 치정 청부살인

입력
2021.11.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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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셰리 밀러의 살인

1999년 11월 8일 미국 미시건주 플린트시의 작은 자동차 견인업체 폐품장에서 업체 사장 브루스 밀러(Bruce Miller)가 숏건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강도 살인으로 보였던 사건은 이듬해 2월, 1,100km 넘게 떨어진 미주리주에서 전직 경찰 제리 캐서디(Jerry Cassaday)가 자살하면서 표변했다. 캐서디는 유서에서 내연 관계였던 피살자의 아내 셰리(Sharee)와 공모해 살해한 사실을 자백하며 사건 정황을 담은 범행 당일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등을 증거로 남겼다.

경찰은 셰리를 1급살인 공모 및 2급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검찰은 이혼 시 위자료에 만족하지 못한 셰리가 캐서디를 유혹해 남편을 살해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셰리는 1999년 7월 네바다주의 한 카지노에서 캐서디를 만나 내연관계를 유지하며 '남편은 마피아 조직원으로 자신과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한다'고, '재혼하려면 남편을 죽이는 도리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범행 직후 셰리는 캐서디와의 연락을 끊었고, 배신감과 죄의식을 못 견딘 캐서디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거였다.

2001년 1월 1심 재판 배심원은 셰리 밀러에 대해 전원일치 유죄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종신형(1급살인공모)과 54~81년 징역형(2급살인)을 선고했다. 셰리는 무죄를 주장했고, 변호사는 유서 증거능력을 문제 삼아 항소했다. 대법원까지 갔던 재판은 2014년 2월에야 1심 선고대로 확정됐고, 2년 뒤 셰리는 1심 판사와 검사에게 보낸 4쪽 분량의 편지로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인터넷 범행 모의를 들어 '최초의 인터넷 살인'이라 불린 그의 사연은 다수의 논픽션과 TV 리얼다큐, 드라마 등으로 제작됐다.

2008년 한 외신은 일러야 2055년 출옥할 수 있는 36세의 셰리가 옥중 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셰리를 다큐에서 보고 호감을 느껴 면회와 펜팔로 정을 쌓은 일리노이주의 한 남성(Michael Denoyer, 당시 56세)이 새 연인이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