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성장의 미래를 설계하는 세계

입력
2021.11.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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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네덜란드 '자동차 없는 날'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과 함께 1차 석유파동이 시작됐다.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의 감산으로 원유가는 두어 달 새 4배나 폭등했고, 세계 경제는 물가 상승과 마이너스 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힘든 시절을 견뎌야 했다.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는 한시 석유 배급제를 실시했다.

네덜란드가 1973년 11월 4일~1974년 1월 6일 사이 열 번의 일요일에 자동차 운행을 전면 금지하는 '자동차 없는 날(Car-Free Day)' 정책을 단행했다. 소방차와 앰뷸런스, 의사와 외국인 관광객, 식료품 공급 차량 등을 제외한 모든 승용차는 일요일 새벽 3시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 운행할 수 없고, 위반 시 최대 1만7,500파운드의 벌금 또는 6년 이하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당시 네덜란드 등록 차량은 약 300만 대였지만, 첫날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적발된 위반 차량은 단 12대였다. 시민들은 도보로, 자전거나 모패드를 타고 나와 도심 대로를 누볐고, 말이나 마차를 몰고 나온 시민도 있었다. 지방 공연을 앞둔 쇼 극단은 공연 장비를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수단으로 날라야 하는 불편을 겪었고, 헝가리에서 건너온 한 범죄자는 훔친 차량을 몰고 다니다 '차 없는 날' 단속에 걸려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소동도 항의 시위도 없었다.

네덜란드의 '차 없는 일요일' 정책은 1939년과 1946년 1956년에 이은 세 번째 조치여서 시민들의 반감이 덜했고, 칼뱅의 종교개혁으로 16세기 민족적 각성을 하게 된 나라답게 금욕의 칼뱅주의가 국민 정서의 일부로 정착된 까닭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세계의 일부는 '녹색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위선을 의심하며 '반(反)성장'의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기후 위기 시대의 네덜란드 정부는 2013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신차 환경세를 부과하고 있고, 올 1월부터 세율을 대폭 인상했다. 2050년 탄소 제로 청사진을 밝힌 네덜란드의 재생가능에너지 소비 비중은 2020년 기준 11%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