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각의 조치를 취하기 위한 정확한 순서, 시기, 조건에 관해서는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핵심 외교안보참모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6ㆍ25전쟁 종전선언 관련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한국 정부와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이란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종전선언 추진이 마뜩잖은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다.
북한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의에 북한은 김여정 국무위원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반응했다. 그러나 ‘이중 기준’과 ‘적대시정책’ 철회를 대화 복귀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전과 차이가 없다.
현재 북미관계는 ‘대화에 나오면 무슨 논의든 하겠다’는 미국과 ‘대화에 나가기 위해 전제조건을 들어달라’는 북한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렇게 평행선만 달리다 보면 내년 3월 한국 대선과 새 정부 출범, 11월 미국 중간선거 국면 이후까지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종전선언은 북미관계 돌파구를 찾기 위한 촉매제로 기대를 모았다. 종전선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도 아니다. 북한 핵ㆍ미사일을 없애기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상징적 조치일 뿐이다.
게다가 종전선언은 북미 수뇌부가 여러 차례 약속했던 조치이기도 하다.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북미 공동 코뮈니케의 ‘적대관계 종식 선언’부터 시작해 2007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종전선언 약속,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종전선언 문안 협의 등 20년 넘게 논의가 이어져왔던 역사가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깊은 불신, 북한에 또 뒤통수를 맞기 싫다는 미국의 소극성이 상황 진전을 막고 있다. 그렇다고 손만 놓고 있을 것인가. 북미 간 비겁한 ‘적대적 공존’을 끝내고 평화로 첫발을 내딛는 길은 70년 해묵은 숙제 완료에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