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누구는 "실패"라고도 평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들만큼 더 아쉬워한 사람이 있을까. 누리호에만 11년, 길게는 로켓에 인생 전체를 건 누리호 핵심기술 책임자들에게 국민은 우선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는 첫 발사 일주일 후인 지난 27일, 누리호가 떠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를 다시 찾았다. 47.2m. 아파트 16층 높이의 발사체가 서 있던 자리는 발사 당시의 극한 상황을 보여주는 흔적들로 가득했다. 누리호 발사현장이 가까이서 언론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발사대 근처는 퀴퀴한 화약 냄새와 탄내가 났다. 발사대 밑에서 누리호를 잡아줬던 지상고정장치(VHD), 연료를 공급했던 녹색 엄빌리컬(탯줄) 타워 부근은 30m 넘게 불에 그을렸다. 엔진 열기로 녹은 페인트와 아스팔트 파편이 100m 근처 산까지 날아가 있기도 했다.
누리호 1호가 떠난 자리에서 기술진은 벌써 내년 5월 2호 발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발사대와 조립동에서 강선일 발사대 팀장, 고정환 한국형발사체 개발본부장, 오승협 발사체 추진기관 개발부장을 차례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0년 넘게 발사체 외길을 걸어온, 누리호의 핵심 기술진이다.
그들의 얼굴엔 여러 표정이 스쳤다. 11년간 매달린 누리호에 대한 애정, 최종 미션에는 실패했다는 속상함, 우주 기술자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주는 실패를 용인하는 국가만 가질 수 있는 영토"라고 그들은 말한다. 정부와 국민들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우주 개발의 연속성이 이어질 수 있도록 신뢰와 기회를 보내달라고 그들은 당부했다.
-발사 순간의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강선일 팀장(이하 강)= 숨이 안 쉬어졌다. 발사대 담당은 점화 후 ‘1초’가 모든 걸 결정짓는다. 발사 10분 전 시작하는 PLO(컴퓨터 자동운용모드) 때부터는 압박감에 짓눌렸다. 2분 전부터는 옆 사람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방향이 틀어지면? 혹시 폭발하면? 온갖 생각이 스쳤다.
오승협 부장(이하 오)= 그동안 한국이 만든 로켓 발사는 모두 봤다. 그래도 떨렸다. 두 달 전부터 수염을 기르고, 안 씻고, 같은 옷만 입으며 기도한 후배 연구진도 있다. 나는 ‘진인사대천명’이라고 담담히 말했지만 실은 심박수가 엄청 올라갔다.
고정환 본부장(이하 고)= 울컥했다. 발사라는 게 참 이상하다. 평시 멀쩡했던 것도 발사 당일 갑자기 문제를 일으킨다. 그날 오전까지도 참 힘들었다. 발사대 아래 밸브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서 1시간 연기했고 고층풍도 변수였다. 내 생애 가장 긴 16분이었다.
-발사 일주일이 지났는데 여전히 바빠 보인다.
강= 실은 더 정신이 없다. 내년 5월 발사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발사대 정비를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지상고정장치에는 결함이 없어 보인다. 발사 당시 충격으로 녹은 센서와 케이블 등을 교체하고 정비하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오= 로켓의 3단 연소가 왜 일찍 멈췄을까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분명 우리가 놓친 작은 무언가가 있을 거다. 조립동 2층 연구실 문을 열면 내년 5월 발사될 2차 발사체 조립 현장이 보이는데, 볼 때마다 서서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고= 다시 어려운 과제를 받아든 기분이다. 발사 직후 프랑스, 러시아 등 각국 연구진과 회사에서 축하 연락을 받았다. “첫 발사에 이 정도면 대성공이다. 축하한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원인을 분석하는 지난한 과정을 다시 거칠 생각을 하니 벌써 어깨가 무겁다.
연구진들은 발사 후에도 쉬지 못했다. 발사 다음 날 퀵 리뷰회의를 했고, 지금은 제주도와 팔라우섬 추적소에서 보내온 텔레메트리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나에게 누리호란' 어떤 의미인가.
강= 두 번째 자식, 나의 전부다.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하지만 문제를 일으킬 때면 얘가 왜 이러나 싶다.
오= 마지막 작품이다. 1987년에 입사 후 34년째 발사체만 바라보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 발사체라 더 애착이 간다.
고= 해본 것 중에 제일 크고 무서운 놈이다. 1단에 들어가는 300톤급 엔진 연소시험은 모두 지상에서 이뤄지는데,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근처에 있는 모든 게 다 날아 갔다. 무섭고 큰 만큼, 의미도 깊다.
-왜 로켓에 인생을 걸었나. 성공보다 실패가 많고, 돈 벌기도 어려운 직업 아닌가.
강= 로켓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 보면 전율이 일어난다. 수십만 개 부품이 정해진 시퀀스에 작동하는 걸 볼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우주로 밥벌이하는, 세상에 몇 안 되는 행복한 사람이다.
오= 인생을 걸 수밖에 없다. 로켓 발사는 빠져나올 수 없는 ‘쾌감의 늪’ 같다. 발사 당시 지축을 울리는 진동과 소리를 한번 경험해보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도전하는 재미도 있다.
고=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다. 발사체 하나 준비에 보통 6, 7년이 걸린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해야지 싶다가도 로켓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이거지’ 하게 된다. ‘한번만 더’ 했던 게 지금까지 오게 됐다.
-누리호 발사 의미를 다시 짚는다면.
강= 설계부터 제작까지 온전히 우리 힘으로 발사대를 만들었다. 발사 과정은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다. 진동이나 발사 환경을 모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해봐야 알 수 있다. 이번 발사로 엔진 추력이 70%에 달할 때까지 붙잡고 있다가 놓아주는 발사기술 등을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고= 발사체 기술 확보는 '우주 카르텔의 입장권’과 같다.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프로젝트에서 일본, 유럽은 서로 화물을 실어주는 등 협력하고 있다. 우리도 그런 협력에 끼려면 자체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비록 위성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지만, 700km까지 올라가는 모든 과정을 성공했다. 의미 있는 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한국은 우주개발 역사가 길지 않다. 30년 만에 급성장했던 비결은 뭔가.
오=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다들 우주에 미친 사람처럼 계속 생각한다. 러시아와 함께한 나로호 발사도 큰 자산이 됐다. 당시 러시아 기술진은 로켓연료를 버릴 때도 다른 재료를 섞어서 버렸다. 우리에게 성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웃음). 결국 분석해냈다.
고= 사실 30년 동안 로켓 하나 못 만드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속상했다. 무에서 하나하나를 갖춰 나가는, 굉장히 지난한 과정이었다. 우리는 로켓 실물을 볼 기회도 없었다. 남들처럼 로켓을 뜯어보고, 역설계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외국 박물관에서 스페이스 셔틀 모형에 머리를 집어넣고 한참을 살펴봤다. 아마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거다.
-정부 지원이 아쉽지는 않았나.
강= 기회를 많이 줬으면 좋겠다. 우리 연구진이 ‘우주는 실패를 용인하는 국가만이 가질 수 있는 영토’라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다. 실패하고, 경험해봐야만 배울 수 있다. 후배들이 다른 발사체를 많이 보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연구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
오= 현장의 목소리와 상황에 조금 더 귀기울여줬으면 좋겠다. 선진국이 민간 주도 ‘뉴 스페이스’ 시대로 간다고 하니, 우리도 비슷한 구상을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은 정부 주도 우주탐사 프로젝트를 장기간 진행했고, 그 덕에 스페이스X 등 기업도 성장했다. 우리는 어떤가. 1단 엔진 제작이 완료되자, 민간 기업에서 '이제 일이 없다'며 엔진 기술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이대로는 뉴 스페이스로 갈 상황이 안 된다.
고= 연속성이 부족하다. 사업 단위로만 생각해서 그렇다. 한 사업이 끝나고 다음 사업에 들어가면 1차 엔진 개발부터 다시 시작하는 식이다. 누리호 사업을 하고 있으니, 후속 엔진개발 연구를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러면 2, 3년은 그냥 날린다. 현실적인 고민도 부족하다. 누리호 성능개선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1, 2단에 들어가는 75톤 엔진 성능을 82톤까지 올리겠다고 하니 ‘이게 무슨 성능개선이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발사대 등 설비 개량을 최소화하면서 연소압 등 엔진 성능을 최대한 개선하는 실현가능한 계획을 낸 것인데, 더 도전적인 걸 하라고 주문받았다. 하지만 발사체를 새로 만들면 모든 장비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