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와 설탕 과자, 테킬라로 상을 차린다. 고인이 생전에 가족, 친지, 친구들과 찍은 사진과 장난감을 올린다. 저승길 편안히 가시라고 작은 배 위에 종이 해골을 싣는다. 멕시코 망자의 날 (11월 1, 2일) 모습이다. 지역마다 차림에 차이는 있지만, 중미 여러 나라는 물론 미국의 라틴 커뮤니티에서도 이 날을 기념한다. 설탕 과자를 올리는 이유는 식민시절에도 독립 이후에도 멕시코에서 유일하게 풍부한 재료가 설탕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을 제물로 바치던 아스텍 풍습은 식민시기 가톨릭 사제들에 의해 오렌지주스와 설탕을 넣고 여성의 가슴 모양을 본떠 만든 '죽은 자의 빵'(Pan de muerto)으로 대체되었다.
중남미 문화에서 죽음은 삶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죽음은 삶과 동일시되며 죽음이 도래할 때까지 열정을 다해 사는 길을 택한다. 장례는 망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 존경심으로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의식이다. 모두가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장례 의식에는 별 차이가 없다. 고인 사망 후 이틀 동안 관을 공개한 후 가톨릭 미사를 드리고 묘지에 안장한다.
정복자들의 도착과 더불어 중남미 대륙의 토속신앙은 가톨릭으로 겉옷을 갈아입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이 올림픽경기 개막식 중계방송 중 칠레를 '산티아고 순례길'로 소개하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도시이자, 스페인 수호성인의 이름을 딴 칠레의 수도다. 정복자들은 식민지 도시에 스페인 성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스페인과 중남미에 같은 이름의 도시가 여럿인 이유다.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 있는 대성당은 본디 아스텍의 신성 지역이었다. 스페인이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한 후 원래의 성전 위에 1573년부터 1813년 사이에 걸쳐 완성했다. 대성당은 독립 전쟁의 영웅들이 묻힌 곳이자 교회와 국가의 분리로 인한 진보·보수 사이의 분쟁, 독립 200주년 기념행사 등 국가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다. 대성당을 헐고 원주민의 토속신앙을 복원하기에는 이미 5세기가 지난 전통이자 문화유산이 되었다. 칠레에서는 길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사고 장소에 '아니미타스'(animitas)라고 불리는 작은 집을 지어 성모상과 꽃을 둔다. 본래 칠레 원주민 인디오들의 토속 종교에서 유래했으나 이제는 종교적·미학적 의미를 지닌 대중예술이 되었다.
망자의 날을 챙기지 않는 국가 사람들도 가톨릭의 위령의 날(11월 2일)이 되면 나름의 방식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린다. 무덤에 제철 꽃을 두거나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망자의 날이나 위령의 날보다 핼러윈이 더 매력적이다. 멕시코 대형폭발사고를 주제로 현지에서 촬영된 영화 '007 스펙터'(2015)가 상영된 후에는 해골 의상을 입고 범인을 쫓는 제임스 본드를 흉내 내거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천 명이 넘는 배우, 무용가, 곡예사들이 행진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후 정부는 망자의 날 행렬을 외화벌이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멕시코 사람들이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력에 부응한 꼴이다.
망자의 날을 다룬 미국 영화 '코코'(2018)에서 주인공 코코는 할머니의 영혼과 'Remember me'를 부른다. "나를 기억해줘. 내 마음에 너를 담았지.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어." 중남미의 종교가 모양새는 바뀌어왔을지언정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마음만은 변치 않았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