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까지 파고든 2030 세대의 계급 차별과 혐오 그리고 싶었죠"

입력
2021.10.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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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개봉작 '가치 캅시다' 조승원 감독
고졸 카투사 소재로 만든 한국영상대 졸업작
미 휴스턴영화제 학생 부문서 은상 수상도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조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D.P.'에 이어 군대 내 폭력을 다룬 영화가 나왔다. 28일 개봉한 '가치 캅시다'는 카투사(KATUSA·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소속 말년 병장이 이른바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군이 되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한국영상대 출신 조승원(30) 감독의 졸업 작품으로 지난 4월 열린 미국 휴스턴영화제 장편영화 학생 부문 은상을 받았다. 조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고졸 카투사'라는 이색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첫 장편을 만들었다.

'가치 캅시다'는 조승원 감독이 대학 3학년 때인 2018년 만든 동명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해 만든 영화다. 제목은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문구인 '위 고 투게더(We Go Together)'를 우리말로 옮긴 '같이 갑시다'의 영어식 발음에서 가져왔다. 25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만난 조승원 감독은 "고졸 카투사라는 소재 자체가 특이해서 영화로 만들면 희소성 있는 설정이겠다 싶어 출발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군 제대 후 뒤늦게 한국영상대에 진학해 지난해 초 졸업했다.

주인공 추해진 병장(김기현)은 영어를 잘한다는 것 외엔 내세울 게 없는 '흙수저' 청년이다. 카투사로선 드물게 고졸 출신인데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선·후임과 동기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다. 가난한 가정과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군이 되려 하지만 절도 누명을 쓰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미군이 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건 동료들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 후임에게까지 머리를 조아리며 서명을 부탁하지만 돌아오는 건 멸시와 조롱뿐이다.

'가치 캅시다'는 일반 사회에서 군대로 이식된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을 직설적으로 다룬다. 조 감독은 "카투사 대부분이 해외파거나 상위권 대학 출신이어서 고졸이 저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처럼 차별을 받았던 적은 없다"면서 "실제 군 경험보다는 2030 세대 청년들 사이의 계급의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또래에 대한 혐오, 무한경쟁시대에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위기감 등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공정을 가장한 비뚤어진 능력주의도 꼬집는다. 이중국적자인 친구 의성(강형석)이 기현에게 "네가 나처럼 미국 시민권자가 되는 게 쪽팔린데 왜 도와줘야 하냐"고 쏘아붙이는 장면은 '인국공 사태'를 연상시킨다. 감독은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불평등과 혐오, 차별이 일상화한 또래 집단 속에서 경쟁에 밀린 개인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조 감독은 평소 정치와 사회에 별 관심이 많지 않았으나 영화를 만들면서 2030 세대의 관심사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고 했다. "제 또래 청년들은 무한경쟁사회에서 나만 뒤처질까봐 두려워하는데 전 그런 데 별로 동요하지 않고 위기감도 느끼지 않는 편입니다. 한량 같았던 거죠. 청년들이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스스로 불행하게 만들까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가치 캅시다'는 제작비가 1억 원이 채 안 되는 저예산 영화다. 제작비의 대부분은 학교 지원을 받았다. 미군이 촬영 협조를 해주지 않아 철수한 미군이 쓰던 건물에서 최소한의 소품을 사용해 만들었다. 조 감독은 "세련돼 보이진 않을지라도 명료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단지 완성하는 게 목표였는데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개봉까지 하게 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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